1920년 8월 2일 보스턴지 1면에 실린 금융피라미드 사기 사건이 미국 전역을 뒤흔들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95년 전 오늘은 피라미드 사기 판매의 원조인 찰스 폰지의 금융 사기가 밝혀진 날입니다. 이 사기는 미국 역사상 최대 금융사기로 피해자만 무려 1만 7,000명, 피해 규모만 1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사건이 일어나기 1년 전 만해도 폰지는 주머니에 2달러 50센트가 전부인 가난한 이탈리아인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는 인플레이션으로 통화가치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미국은 경제 호황을 누리며, 달러의 강세로 환율이 급변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찰스 폰지는 각국 우표는 전쟁 전 환율로 교환되는 점을 노리고 우편쿠폰 사업을 구상합니다. 미리 요금을 내면 해외에서 우편을 보낼 때 우표쿠폰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요. 이때 이탈리아에서 산 우편 쿠폰을 미국에서 달러로 바꿀 경우 6배의 환차익을 볼 수 있다고 투자자들을 모았습니다.
폰지는 돈을 40일간 맡기면 원금의 50%, 90일 동안 맡기면 투자금의 100%로 수익을 보장한다고 신문 광고도 냈습니다. 폰지의 달콤한 속삭임으로 사람들은 그의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2월에는 5,000만 달러였던 투자금이 6월에는 4억 5,000만 달러로 불어났습니다.
과연 찰스폰지는 성공한 사업가였을까요? 그에게는 숨길 수 없는 과거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놀기를 좋아해 로마대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1903년, 21세 청년 찰스폰지는 미국 땅을 밟게 됩니다. 수중에 돈 한 푼 없었던 까닭은 선상에서 도박으로 돈을 몽땅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그는 은행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밀수단에 껴서 은행장의 돈을 훔치기까지 합니다. 그는 감옥에 들어가서도 자신의 이탈리아 친척들에게 교도소장의 특별보좌역으로 채용됐다고 거짓 편지를 보냅니다. 감옥에서 5년을 살다 나온 폰지는 1919년부터 환차익을 이용해 돈을 벌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폰지의 사업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그렇게 많은 우편 쿠폰을 유통시킬 수 없었습니다. 찰스폰지의 사업에는 우표쿠폰만 1억 8,000만 장이 필요했지만, 공급은 3만장에도 못 미쳤다고 합니다. 또한 49일간 맡기면 원금의 50%의 투자 수익을 보장한다고 했지만, 쿠폰을 환전하는 데도 45일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를 수상히 여긴 보스턴 우체국이 의혹을 제기했고, 찰스 폰지의 사기극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결국 그의 사기행각은 경제사에 기록으로 남았고 ‘폰지게임’이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폰지게임’이란 실제로는 아무런 사업도 하지 않으면서 나중에 투자한 사람의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에게 원금과 이자를 갚아나가는 일종의 금융 다단계 사기 수법을 말합니다. 1920년대 일어난 이 금융사기는 지금도 우리들 곁을 떠돌아 다니고 있습니다.
/서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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