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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도올과 김우중
입력2000-01-24 00:00:00
수정
2000.01.24 00:00:00
동양 철학자 도올 김용옥이 김우중을 만난 것은 10년 전 일이다. 이리(익산) 원광대학 캠퍼스에서 두 사람이 조우하게 된 것을 인연으로 도올은 한 권의 책을 썼다.지난 91년 3월에 초판이 나온<대화>다. 도올의 말대로 재벌 총수와의 이야기를 학자가 썼다면 「세상이 찧고 까불게」걸려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도올은 유위론(有爲論)을 책머리에서 설파했다. 자신이 노자(老子)의 무위론(無爲論)을 대변한다면 김우중 사상의 입장은 유위라는 것이다.
유위는 「만드는 것」「짓는 것」이며 문명은 유위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유가철학의 바이블 중 하나인 「예기(禮記)」에 보면 「만드는 사람이야말로 성인(聖人)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김우중은 「만드는 사람」이다. 고로 김우중이야말로 성인이라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논지다.
그래서 자신과 더불어 대화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인물이며 그의 철학에 대한 탐구는 가치 있는 것이라 변명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실 그가 부연했듯이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는 불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 냈다」는 영웅성에 현대적 의미가 있다고 볼 법도 하다.
「스스로 있게 한다」는 자연주의 신봉자가 왜 이렇게 논리적 비약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의 말인즉 김우중과의 담론의 주제가 유위와 무위여서 그렇다고 했다. 그러나 도올은 오늘이라는 시점에서 볼 때 섬뜩할 수도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김우중의 창업동지인 윤영석 사장이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경제는 공황과 같은 엄청난 좌절을 겪게 될 것』이라는 말에 『그럼 대우부터 망할텐데...』라고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뒤 김우중은 무위로 돌아갔다. 그리고 도올은 TV를 통해 노자의 사상을 신나게 전파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2천수백년 전의 사상을 TV라는 문명의 이기를 통해 대중 속에서 살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으니 도올은 유위로 성공하고 있는 게 아닐까.
지난 2년여간 한국은 또 다른 의미의 「경제시대」속에 있다. 수많은 기업과 기업가가 무위로 돌아가는가 하면 벤처기업에서 수많은 유위의 영웅들이 탄생하고 있다. 그것은 40년 전 가발 목재 수출로 시작된 이른바 성장 드라이브 시대의 대격변을 방불케 한다.
이것이 다음 시대 성장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대우의 비극이 그러했듯 또다른 경영철학의 빈곤으로 무위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도올이 김우중을 다시 만나 책을 쓴다면 무슨 소리를 담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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