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한 달 만에 다시 성장률 전망치를 낮출까.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초 우리 경제가 지난 2014년 수준(3.3%)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 바 있다. 당초 신년 경제전망의 3.8%에서 하향 조정한 것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메르스 변수를 감안하지 않은 전망치. 하지만 사정은 달라졌다. 한국은행이 메르스 충격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1.5%로 내리면서 추경 카드를 꺼내 들어야 할 상황. 최 경제부총리도 "사태 추이를 봐가며 (추경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내외 상당수 연구기관에서는 3%대 성장이 어렵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은 역시 이대로 가다가는 2%대로 주저앉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2013년 추경 편성 사례는 일련의 시사점을 던진다. 17조3,000억원의 추경 예산안을 마련했던 2013년 3월 정부는 예산안 편성 당시 4%로 내다봤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까지 낮췄다. 2013년은 명확한 경기침체 요인이 있었던 1998년(외환위기)과 2009년(글로벌 금융위기)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대규모 추경 예산안을 마련한 해다. 당시 정부는 사상 최초로 7분기 연속 분기 성장률이 0%대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추경 예산안 마련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추경 예산의 전제조건인 '경기침체 우려'가 컸던 셈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다시 0%대에 진입한 우리 경제는 지금껏 사정이 많아 나아지지 않고 있다. 더욱이 최근 들어서는 메르스 확산으로 소비심리가 급속히 얼어붙었다. 대규모 추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실질 국내총생산(GDP)과 잠재 GDP의 차이인 GDP 갭이 11분기 연속 마이너스인데다 세월호 참사 이후 소프트 패치에 빠졌던 경기흐름도 더블 딥으로 가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을 만큼 경기가 좋지 않다"며 "추경의 요건은 충분히 갖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추경을 편성할 경우 재정당국은 2013년과 마찬가지로 성장률 전망치를 낮춰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경기침체 우려'라는 추경 편성의 명분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자니 그만큼 경기가 좋지 않다는 점을 시인하는 꼴이 되고 그대로 고수하자니 추경 예산안 편성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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