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에 대한 관점들 중 하나는 여성은 선천적으로 차가우며 남성은 뜨겁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따뜻한 바람이 불 때 이루어진 수태를 통해서는 남자아이가 태어나고, 차가운 바람은 여자아이를 만들어 낸다고 했다. 바람의 온도에 따라 인간의 성이 결정된다는 논리다. 중학교에서 유전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비웃을지 모르겠다. 사람을 비롯한 포유류와 조류는 난자와 정자가 수정될 때 이미 남녀가 결정되기 때문에 그 뒤 전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모든 생물이 다 그럴까. 암수의 성 결정 메커니즘은 동물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물고기나 파충류 따위의 냉혈동물은 성염색체가 없어 대부분 비유전적인 요인, 예컨대 온도 또는 환경 여건에 따라 성이 결정된다. 온도에 따라 성이 결정되는 동물은 파충류에 많다. 악어와 같은 몇몇 파충류의 알은 부화할 때의 온도가 낮으면 암컷으로, 온도가 높으면 수컷으로 태어난다. 대표적인 것이 미시시피악어와 엘리게이터 악어, 그리고 도마뱀이다. 과학자들은 미시시피악어 풀 둥우리에 온도계를 꽂아 부화 온도를 측정하고, 부화했을 때 암컷인지 수컷인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연못과 같이 습하고 시원한 곳의 둥우리에서는 암컷이 많이 나왔고, 건조하고 더운 땅의 둥우리에서 부화한 알은 대부분이 수컷이었다. 적당한 온도면 무조건 수컷만 태어나는 것도 있다. 북미산 악어는 부화시 살기 좋은 적당한 온도면 수놈만 태어난다. 수놈은 항상 암놈보다 덩치가 크다. 성분화(性分化)학자인 미국의 디밍 박사는 악어의 경우 덩치가 크고 빨리 성숙해야 더 많은 암컷을 거느릴 수 있기 때문에 주변 여건만 좋다면 수컷을 많이 낳는 것이 생존경쟁에 유리하다고 해석한다. 같은 파충류라도 거북은 반대로 햇볕이 따뜻한 곳에서는 암컷이 태어나지만 응달에서는 수컷이 생긴다. 미국의 붉은바다 거북은 산란지가 따뜻한 남쪽이면 90% 이상이 암컷으로 부화된다. 어류는 이미 성이 결정되어 부화되지만 간혹 온도 변화에 따라 성이 바뀌기도 한다. 온도가 너무 심하게 높으면 민물고기인 피라미의 경우 일부 암컷에게서 수컷의 추성돌기와 지느러미의 붉은색 변화가 나타난다. 유전자형은 분명 암컷인데 해부해 보면 난소 대신 정소가 발달되어 있다. 이런 현상은 극히 극단적인 경우에 발생하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온도에 의한 성 결정은 진화적인 장단점을 가진다. 활동이 왕성한 시기에 암컷을 많이 만들어 자손을 번창시킬 수 있다. 반면 지역적으로 온도가 상승하거나 지구의 온난화가 가속화되면 온도에 의해 성이 바뀌는 종들은 암컷과 수컷의 성비가 한쪽으로 편중되게 된다. 이는 멸종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 환경에 대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더욱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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