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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1억 관객 시대'가 열렸다.
영화진흥위원회는"19일까지 한국영화 올해 누적 관객 수가 9,980만6,735명으로, 최근 한국영화의 평일 평균 관객 수가 20만 명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올해 누적 관객 수가 20일 1억 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20일 밝혔다. 한 해 1억 관객 동원은 한국영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인구 5,000만 명으로 보면 한 사람당 평균 두 편씩 한국영화를 봤다는 얘기다.
올해는 또'도둑들'광해, 왕이 된 남자' 등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영화가 처음으로 한 해 두 편이나 나왔고 4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한 영화도 9편이나 된다. 한국영화 점유율도 59.0%로 지난해(51.9%)보다 7.1%포인트나 증가했다. 한국 영화가 르네상스기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영화 1억 관객 시대를 이끈 원동력은 무엇일까. 영화계는 군살을 빼고 콘텐츠에 집중한 결과라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전까지 한국영화가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해는 2006년으로 '왕의 남자'와 '괴물'이 6개월 간격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역대 최대 호황기를 누렸다. 하지만 활황과 함께 무분별한 투자가 이뤄지는 등 시장에 거품이 일면서 이듬해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전체 시장 점유율도 2006년 63.6%에서 2010년 46.6%까지 떨어졌다. 바닥을 쳤던 한국 영화는 지난 해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사극 액션'최종병기 활'과 복고 열풍을 낳은'써니'가 7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30·40대 중년 관객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였다.'도가니'와'완득이'등 웰메이드 영화들이 흥행에 가세하면서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마당을 나온 암탉'은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200만 관객을 넘으며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넓히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올해까지 이어지며 한국영화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그러나 유례없는'한국영화 르네상스'를 두고 마냥 축배를 들 수 없다는 게 영화계 안팎의 시선이다. 대기업 중심의 수직계열화와 스크린 독과점 문제 등 고질적인 병폐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올해 전체 시장으로 따지면 CJ의 배급 점유율이 24.7%, 쇼박스㈜미디어플렉스가 14.0%, 롯데엔터테인먼트가 13.8%로 3대 기업의 점유율이 52.5%에 달했다. 국내에 진출한 외화 직배사들 소니픽쳐스(12.9%), 워너브러더스(6.5%), 이십세기폭스(4.6%)까지 더하면 국내외 대기업들이 전체 관객의 76.5%를 차지한 셈이다. 대기업 투자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들이 스크린의 80% 가까이를 차지하면서 국내 저예산·독립영화는 개봉 첫 주에도 교차상영으로 내몰리며 공정한 경쟁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터치'의 민병훈 감독은 지난 15일 이 같은 현실을 꼬집으며 스스로 종영을 선언, 영화진흥위원회에 CGV 등 대기업 영화관의 불공정 거래를 신고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 7월 대기업과 함께'한국영화 동반성장 이행협약'을 만들었지만, 강제력 없는 권고안은 유명무실하다는 게 영화계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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