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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구석기 시대 불을 발견하면서 비로소 다른 짐승보다 우위에 섰다. 음식을 익혀 먹게 되었으며 실내에 화덕을 설치해 추위에 떨지 않게 됐다. 불을 보호하기 위해 정착생활을 하게 되고 이는 농경 생활의 개막으로 이어졌다. 수 만년간 이어오던 횃불의 시대는 토머스 에디슨이 1879년 백열등을 발명하면서 종말을 맞았다. 이후 인류는 형광등의 시대를 거쳐 21세기부터 발광다이오드(LED)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전문가들은 2018년께부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대가 열리고 2025년쯤에는 양자점발광다이오드(QLED)가 이를 대체할 것으로 내다본다.
1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이창희(51)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꿈처럼 멀기만 했던 QLED 시대를 크게 앞당긴 과학기술자이다. 이 교수는 세계 최초로 기존 QLED 소자 구조를 바꿔 발광효율을 3배 이상 높이고 수명을 1,000배 이상 늘렸다. 현재 세계에서 연구되는 QLED 소자 구조는 대부분 이 교수가 고안한 기술을 따른다. 그는 이 공로로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서울경제신문이 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7월 수상자로 선정됐다.
OLED는 화합물을 재료로 쓰는 LED와 달리 유기물을 재료로 쓰기 때문에 광원을 면의 형태로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점 광원을 사용하기 때문에 직접 조명으로는 쓰지 못하고 갓이 필요한 형광등이나 LED와 달리 그 자체가 간접 조명이기 때문에 다양한 디자인으로 제품을 만들 수 있다.
QLED는 여기서 더 나아가 OLED보다 더 나은 색 순도와 저렴한 공정을 뽐낸다. 반도체를 나노 크기로 만든 양자점을 쓰기 때문에 빛의 삼원색인 빨강·초록·파랑색마다 각각 다른 재료를 써야 하는 LED·OLED와 달리 하나의 재료만으로 크기에 따라 색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재료가 액체로 돼 있기 때문에 대규모 인쇄 공정으로 제작할 수 있어 기화방식을 쓰는 OLED보다 가격경쟁력도 월등하다.
이 교수는 "TV 기준으로 QLED 첫 제품이 앞으로 5년 뒤에 나오고 10년 뒤면 LED·OLED를 제치고 대중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교수는 특히 지난 2012년 주로 양극으로 사용되는 인듐·주석산화물 전극을 음극으로 사용하고 그 위에 산화아연 나노입자 전자전달층, 양자점 박막, 유기물 홀 전도층과 금속 양극을 순차적으로 적층하며 전통적인 소자와 구동방향이 정반대인 QLED 소자를 제작해 효율을 크게 높였다. 박사 과정 때 복사기·프린터의 핵심 부품인 OPC를 연구했던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것이다. 당시 그의 연구는 현재 유기 태양전지에 사용되는 방법으로 빛을 전기로 바꾸는 복사기·태양전지 구조를 역으로 전기를 빛으로 바꾸는 QLED 소자에 적용한 셈이다. 이를 통해 1~2%에 머물던 QLED 소자 발광효율은 백색 기준으로 평균 5%에 도달, 단숨에 LED(20%), OLED(10%) 수준에 근접했다. 이 교수는 "중국이 현재 OLED 기술을 추격하고 있는 지금 QLED 연구에 먼저 나서야 다음 세대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QLED 전에 국내 OLED 기술을 발전시킨 선구자이기도 하다. 1995년부터 LG화학기술연구원에서 OLED 프로젝트 팀장을 맡아 대학에서까지 연구를 이어갔다. 현재 그는 독성이 있는 셀렌화카드뮴 대신 인화인듐을 사용한 QLED 소자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2011년 0.008%에 그쳤던 발광효율을 지난해 3.5%까지 끌어올렸다.
이 교수는 "발광소자는 0.1%만 효율이 좋아져도 경제성이 완전히 달라진다"며 "현재 재료를 비롯해 QLED 원천기술은 미국 등 선진국이 쥐고 있는데 우리도 원천기술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목 "어릴적 전기없어 호롱불로 공부… 고교 때부터 물리학에 푹 빠졌죠" ■이창희 교수는 윤경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