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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빨리… 짧게 짧게… 앞가림 급급
입력2001-10-18 00:00:00
수정
2001.10.18 00:00:00
■ 경제행동 초단기화증시, 테러이후 당일매매비중 50% 넘어
기업들 초단기상품만 선호 '몸사리기'
정건용 산업은행 총재는 최근 "국내 모든 경제 주체들이 100미터 앞만 바라본다"고 현상을 진단했다.
그의 언급처럼, 장기화하는 경기 침체 속에서 금융기관과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 주체들이 미래에 대한 극심한 불확실성 속에서 의사결정 시스템을 무조건적으로 '짧게, 짧게' 움직여가고 있다.
특히 자금시장은 하반기 들어서면서 사상 유례없이 짧은 순환동향을 보이고 있다.
예금과 채권시장은 물론 주식시장의 투자자들까지도 단기 거래가 일상 현상으로 굳어졌다.
정부 정책도 마찬가지다. 위기 상황 속에서 시장의 불확실성을 다잡아야할 정부 당국자들도 위기 경제 상황을 치유하느라 급급, 정책 결정 과정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채 임기응변에 급급하는 실정이다.
◆ 하루살이 시장
올초 자금시장엔 다소의 기대감이 있었다.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금융시장 투자패턴도 장기화할 것이란 낙관 심리였다. 그러나 이는 '허상'이었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고 미국 테러 사태후 금융시장은 '하루살이'로 변한 상황이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주식을 당일 샀다가 파는 당일매매 비중은 미 테러사태 이후 전체 거래량의 50%를 넘어설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지난 2월 38.70%, 8월 47.83% 였던 것이 지난달엔 55.52%로 급등했다. 영풍산업 등 일부 종목은 70%를 넘어설 정도다.
채권시장도 채권을 사면 비교적 오래 갖고 있던 예전과는 달리 투신, 은행 등 기관들조차 그날 샀다 그날 팔며 매매차익을 노린다. H투신운용 펀드매니저는 "장세 불안으로 장기 보유에 대해 확신이 없다"며 "가급적 만기를 짧게 갖는 한편 단기 딜링에 주력중이다"고 말했다.
금감원 통계에 따르면 회사채 시장도 단기물에 대한 선호 현상이 심화돼 3년 미만의 단기물 발행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7월 6.8%였던게 8월에 9.8%, 9월에는 17.2%로 급등했다.
◆ 예금의 단기 부동화도 가속
예금패턴의 단기 부동화는 고착화한지 오래다. 예금자들은 6개월, 1년 이상짜리 상품은 아예 관심 밖이다. 길게는 3개월, 짧게는 하루짜리 상품에만 돈이 들어온다.
입출금이 자유로운 MMF(머니마켓펀드) 잔고가 이를 입증한다. MMF잔고는 지난 8월 1조986억원이 증가한데 이어 9월엔 4조3,680억원이나 급증했다. 지난 11일 한국은행의 콜금리 동결로 기대심리가 다소 변화, MMF의 증가세가 주춤해지고는 있지만 부동화 현상을 멈추게 하기는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채권형 단기상품도 증가세를 지속, 테러사태후 3조원 가량 늘었다. 반면 장기형은 고작 2,000억원 증가했을 뿐이다. 현투증권의 관계자는 "법인들이 초단기 상품에만 자금을 넣는 등 테러사태 이후 몸사리기가 더욱 심해졌다"고 말했다.
◆ 장기(長期)는 없고 위기 대응만 있는 정부 정책
지난해 현대 사태후 금융당국이 펼쳐온 정책중 1년 이상을 내다보고 내놓은 정책은 거의 없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는 1년짜리 단기 정책으로 끝났고, 프라이머리CBO(발행시장 채권담보부증권) 제도를 위한 신용보증기금의 재원 확충은 계속해서 떼움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주식시장을 살리기 위한 정책 수립과정도 대증요법으로 일관한 흔적이 도처에 깔려 있다.
비과세 고수익펀드에 이어 최근 등장한 장기주식상품 등 모든 게 세금 혜택이란 단일 도구에 의존하고, 한계에 도달하자 경제원칙마저 훼손시키는 무리한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정부는 지금 연말 이후의 자금 안정대책을 찾느라 머리를 싸메고 있지만, 이 또한 얼마나 약효가 갈지는 미지수다.
미래에 대한 비전 부재는 차치하고 관련부처간 호흡 맞추기도 실종됐다. 재벌 정책은 종합적 그림 없이 규제완화라는 대세에 밀려 부처간 다툼만 계속하고 있어 리더십만 훼손됐다.
재벌에 대해 엄청난 이해가 걸려 있는 사안을 단기 대응으로 일관하고, 이 또한 부처간 입도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테러 사태후 미국 정부의 대응은 말그대로 전광석화였다. FRB(연방준비제도위원회)의 금리인하, 유동성 확대, 항공산업에 대한 구제금융 등.. 한국 정부도 비슷한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시기는 딴판이었다.
항공사 구제금융을 놓고도 부처간 승강이를 거듭했고, 콜금리 인하를 놓고는 재경부와 KDI 등 곳곳에서 한국은행의 정책결정에 딴지를 걸었다.
하루살이 경제 주체들의 중심을 잡아야할 컨트롤타워(정부)마저 공동화 현상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김영기기자
홍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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