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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주요 주택 공급원인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장에서 미분양이 속출하며 조합과 건설사들이 '좌불안석(坐不安席)'이다. 일반분양으로 사업비를 회수해야 하는 조합과 건설사 입장에서 미분양은 곧 부담금 증가와 손실로 돌아온다. 재개발ㆍ재건축은 조합원 물량이 포함돼 있어 건설사 입장에서는 비교적 위험부담이 작은 사업이고 입지조건 또한 좋은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부동산경기 침체로 이 같은 메리트도 별무소용이다.
주택경기가 좀처럼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올 2ㆍ4분기로 예정됐던 재개발ㆍ재건축 분양일정이 줄줄이 하반기로 미뤄지고 있다. 17일 건설ㆍ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분양 성수기인 4~6월 서울시내 총 20곳의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장에서 5,000여가구의 일반분양이 계획됐지만 이 중 60%에 해당하는 11곳 3,000여가구 물량의 분양이 하반기로 연기됐다.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지가 잇따라 분양을 미루는 이유는 이미 분양한 사업지의 성적 때문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5월까지 청약을 실시한 서울지역 22곳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장 중 1순위에서 마감된 곳은 1곳에 불과하고 3순위 마감도 6곳에 그쳤다. 나머지 15곳은 모두 청약 미달된 것으로 나타났다.
2ㆍ4분기에 분양할 예정이던 재개발ㆍ재건축단지 중 절반가량이 청약 일정을 하반기로 미룬 것은 대규모 미분양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분양 시기를 늦추는 것도 미봉책에 불과하다. 주택거래가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분양 시기를 하반기로 늦춘다고 분양이 잘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팀장은 "최근에는 투자 수요가 거의 사라지고 실수요만 남았기 때문에 하반기에 실물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거래도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분양가를 낮추는 수밖에 없는데 조합 반발이 심해 건설업체들이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조합과 시공을 맡은 건설사들은 일부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미분양물량 소진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할인판매에 나서고 있다. 조합 입장에서는 늘어나는 금융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하루빨리 분양을 끝마쳐야 하고 건설사들도 공사비를 회수하기 위해 '떨이판매'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일례로 고덕주공1단지 아파트를 재건축해 지난해 12월 입주한 '고덕아이파크'의 경우 미분양분인 전용면적 177㎡를 최고 41%까지 할인판매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최근 들어 일반분양분보다 훨씬 저렴한 조합원 분양권 매물이 시장에 속속 나오면서 미분양물량 소진도 쉽지 않다. 지난 5월 분양했지만 청약 미달된 서울 마포 아현뉴타운3구역 '아현 래미안 푸르지오'의 경우 전용 59㎡의 일반분양물량은 5억2,000만원이지만 조합원물량은 4억7,000만원으로 5,000만원가량 싸다. 일반분양분에 비해 동ㆍ호수 등 위치가 좋은 아파트가 더 싼값에 쏟아지면서 중도금 이자 후지급제 등의 혜택을 줘도 일반분양물량을 구입하려는 수요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김규정 부동산114 본부장은 "재건축ㆍ재개발은 실거주보다는 투자 비중이 높다"면서 "사업 지연 등으로 투자자가 감당할 수 있는 금융비용이 한계에 다다라 조합원들이 분양권을 던지기 시작하면 일반분양에 성공하기는 더 어려운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건설사들은 일반분양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어려움을 타개하려 하지만 이마저도 조합의 반대에 부딪혀 쉽지 않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분양가를 낮추려면 관리처분총회를 다시 열어야 하는데 어떤 조합원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미분양 소진을 위해 자신들이 내야 하는 분담금을 높이는 선택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기가 없는 대형을 줄이고 중소형 위주로 설계변경을 하는 사업장도 늘고 있다. 강동구 고덕주공6단지 재건축조합은 최근 중소형 위주로 설계변경을 단행했다. 60㎡ 이하 소형을 317가구에서 416가구로, 60~85㎡ 이하를 종전 675가구에서 913가구로 늘리는 한편 85㎡ 초과 중대형을 528가구에서 332가구로 대폭 줄였다. 고덕시영아파트도 주민 선호 평형조사를 통해 최근 소형 비율을 20%에서 29.4%까지 올린 정비계획안으로 서울시 건축심의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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