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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의 권한, 때로는 존폐를 놓고 부침을 거듭해왔다. 정권이 내놓는 가치에 따라 엄청난 파워를 과시하기도 하지만 기업 활동을 옥죄는 대표적인 집단이라는 이유로 한없이 위축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새로운 정권의 특성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곳 중 하나가 공정위다. 이런 배경 때문에 공정위 관료들도 새 정권 출범을 전후로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새로운 화두를 내걸어 존재 가치를 알리려 한다.
이 같은 상황이 대선을 앞두고 다시 한번 벌어지고 있다. 여야 대선주자들이 경제민주화 방안의 하나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공정위가 전속고발권을 크게 강화하는 방안으로 공정거래법 개정에 나선 것이다. 이를 두고 사실상 공정위의 '밥그릇 지키기'가 아니냐는 비판과 치밀한 경제 효과 분석이 필요한 기업 사건의 경우 공정위의 수사 전문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교차하고 있다.
18일 공정위에 따르면 검찰 고발을 대폭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속고발권을 강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전속고발권이란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은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의 공소제기(기소)가 가능하도록 한 것을 말한다. 이는 일반 시민이나 주주, 소비자에 의한 고발권 남용으로 기업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1996년 도입됐다. 하지만 공정위가 그동안 기업을 검찰에 거의 고발하지 않으면서 재벌을 봐주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공정위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전속고발권 강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우선 담합, 불공정 하도급거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일감 몰아주기 등 소비자 피해가 크거나 악의적인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의무 고발 사유를 신설하기로 했다.
고발 여부에 대한 포괄적 예외조항도 사라진다. 예외조항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해 자의적인 고발 면제를 막자는 취지다. 반복적으로 법을 위반하는 상습 위반기업에 대한 고발 기준도 대폭 강화된다.
손해배상예정액제도도 확대할 방침이다. 손해배상예정액제도는 공공 발주나 조달계약 입찰 담합 때 일정 비율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사전에 정한 후 담합이 발생하면 즉각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다.
공정위는 이를 통해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비판을 불식시키는 동시에 정치권의 전속고발권 폐지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기업 사건에서 영향력이 감소되는 것을 우려해 조직 지키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대선주자들의 공약처럼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이 사라지면 검찰과 공정위의 동시다발적 수사로 기업의 경제활동이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경제 효과보다 법 위반을 우선시하는 검찰 수사의 속성상 불필요한 기업 수사가 난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전속고발권이 폐지될 경우 검찰과 공정위의 동시 수사로 수사력이 낭비될 뿐 아니라 수사 대상도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게 된다"며 "공정위가 정치권의 비판을 수용, 전속고발권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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