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반복되는 짬짜미(담합) 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 큰 칼을 빼들었다. 입찰 사업 등에서 담합을 주도한 기업은 경영진까지 처벌하고 범행을 자진신고하더라도 예외 없이 사법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또 담합 사건 수사를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에 의존했던 관행에서 벗어나 선제적인 수사를 통해 담합 사례를 적극 발굴해 처벌하기로 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담합 범죄 사건처리 기준을 마련했다고 21일 밝혔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그간 담합 범죄는 사법처리 범위가 좁고 처벌수준도 낮아 기업들은 돈으로 때우고 반복적으로 담합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 같은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사법처리 수준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우선 담합을 주도한 기업의 경우 담합을 지시한 최고 윗선까지 철저히 수사해 처벌하기로 했다. 사안에 따라 회사 경영진까지도 처벌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담합 사건을 1차 적발하는 공정위도 담합을 저지른 개인에 대해서는 고발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고 검찰도 담당 실무자를 처벌하는 선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검찰은 "앞으로는 담합을 하면 회사 경영진까지 법정에 설 수 있다는 신호를 줘 담합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죄질이 나쁠 경우 구속 수사하는 등 처벌수준도 높인다. 해당 임직원이 관련 전과가 있고 담합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데다 소속 기업도 담합 범죄 전력이 많은 경우라면 구속 수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또 담합 사범에 대해 벌금을 구형하는 약식기소를 지양하고 원칙적으로 정식재판에 넘겨 징역형을 구형할 예정이다.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공정위가 담합 등 불공정행위를 한 기업을 고발한 사건 가운데 검찰이 정식재판을 청구한 사건은 17.6%에 그쳤다. 재판에 넘겨져 실제 징역형이 선고된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사건처리 기준에는 담합을 주도한 기업은 자진신고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사법처리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른바 리니언시(자진신고자감면)제도를 처벌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를 막겠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담합 사실을 제일 먼저 신고한 1·2순위 기업은 형사고발을 면제해주고 있고 검찰도 이들 기업에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은 담합을 주도한 후 사업권을 따내 막대한 이익을 누린 기업까지 리니언시제도의 혜택을 보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해 앞으로는 이런 기업에 대해서는 고발요청권 행사 등을 통해 적극 사법처리하기로 했다. 검찰은 새만금 방수제 공사에서 담합을 저지른 SK건설에 대해 지난달 처음으로 검찰총장 명의의 고발요청권 행사를 통해 사법처리한 바 있다.
담합 사건 수사를 공정위의 고발에 의존해온 관행도 개선한다. 공정위 고발이 없어도 검찰이 담합 사례를 선제적으로 찾아 적발하기로 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공정위에서 공소시효를 넘겨 고발해오는 경우가 적지 않아 적절한 사법처리가 어려웠던 점을 반영해 앞으로는 담합 사건에 있어 검찰의 선제적 인지수사를 확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특히 "담합 사건에 대해 공정거래법을 적용하면 공정위의 '전속고발제도'에 따라 검찰의 인지수사가 불가하지만 형법상 입찰방해, 건설산업기본법 등을 적용하면 인지수사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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