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의 머리와 몸통이 따로 놀고 있다. 모토인 '당원 중심의 정당'답게 4.2전당대회에서 당원들의 입김이 강해지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분위기 이면에 재ㆍ보궐 승리를 통한 과반의석 재확보를 위한 하향식 공천이 상존하는 게 열린우리당의 현실이다. 당원 입김 '만만찮네'
당비 내는 기간당언들 지도부 경선 최대변수로 “지난 대선에서는 정치혁명을 이뤘고, 작년 총선에서는 선거혁명을 이뤘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정당혁명을 계속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임채정 의장이 1일 마지막 집행위원회의를 주재하면서 당의 과거와 현재를 요약한 말이다. 우리당의 4ㆍ2 전당대회는 2기 지도부를 구성하는 것 외에도 최초로 기간당원들이 지도부를 선출하는 자리라는 의미도 갖는다. 이 때문에 선거전 시작 당시 우리당 인사들은 ‘한국 정당사를 새로 쓴다’며 당권 레이스의 분위기를 띄웠다. 우리당의 기간당원제는 당비를 납부하는 당원들을 중심으로 모든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혁신적인 정당구조다. 과거 지역주의 계파정치나 보스정치의 한계를 뛰어넘는 정당민주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한 발 앞서 ‘진성당원제’라는 이름으로 이 제도를 실시했지만, ‘주류 정당’으로서 이 같은 민주적 정당구조를 만들어 낸 것은 사실상 우리당이 처음이다. 한나라당은 당 지도부에서 ‘책임당원제’를 도입하자는 움직임이 있지만 당내 반발에 부딪혀 있는 상태다. 우리당에서 기간당원제가 도입되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특히 지난해 여름에는 현실론에 압도돼 기간당원제가 무산될 뻔한 위기도 있었다. 당 일각에서 “입당원서 받기도 어려운데 돈 내고 입당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너무 이상적인 주장이다”라는 비판이 제기됐던 것이다. 결국 평당원들이 ‘전국 당헌당규 개악저지 비상대책위’를 꾸리고 8월 10일부터 당사에서 단식농성까지 벌인 끝에 기간당원제가 관철될 수 있었다. 지금은 당권 경쟁에 나선 8명의 후보 중 누구도 기간당원제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을 만큼 이 제도가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과제도 많다. 당장 재보궐선거 공천만 봐도 진정한 상향식 의사결정구조가 정착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기간당원제는 제도로서 정착단계로 평가받고 있다. 과제는 많지만 풀뿌리 민주주의가 당 하부에서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하향 공천 '여전하네'
재보선 6곳 승리 다급 "3곳은 경선없이 공천" 열린우리당은 4ㆍ30 재보선이 치러질 국회의원선거구 6곳 가운데 충남 공주ㆍ연기, 경남 김해 갑, 경기 포천ㆍ연천지역의 후보를 기간당원 경선 없이 전략공천을 통해 선정하기로 했다. 총선에 올인하겠다는 뜻이다. 이미 충남 아산시 출마 후보로 이명수 전 충남부지사를 영입한 터라 우리당은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전체의 3분의 2를 하향식 공천으로 출마자를 정하게 된다. 우리당 관계자는 "일정상 세곳 모두 경선을 거쳐 후보를 뽑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며 "다만 전략공천에 앞서 충분한 현지여론조사를 실시해 잡음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은 지역 주민과 당원이 절반씩 참여하는 여론조사를 실시해 당선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공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하향식 공천 방식은 우리당이 추구하고 있는 '당원 중심의 정당 건설'이라는 대의와는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전략공천자로 결정되거나 거론되고 있는 인사들의 면모가 당 정체성과 맞지 않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기간당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우리당 간판으로 아산시에 출마하는 이명수 후보는 지난해 총선에서 자민련 후보로 나왔던 인물. 이 후보의 공천이 결정되자 지역구 당원들이 서울 중앙당까지 찾아와 시위를 벌일 정도로 반대가 심하다. 더욱이 공주ㆍ연기에도 자민련 출신인 윤재기 전 의원의 공천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논란거리다. 우리당 당원게시판에는 "윤재기를 전략공천 한다면 낙선운동을 하겠다"거나 "기왕 과거로 가는 바에야 전두환, 노태우를 공천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등의 비난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에 따라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과반의석 회복, 충청지역의 전략적 중요성 등을 고려하면 당선가능성을 최우선으로 놓고 생각해야 하지만 '현실과 타협하면서 대의를 버렸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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