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같은 세계적인 금융회사가 나올 순 없을까.”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금융 부문의 ‘글로벌 플레이어’ 탄생을 강조한다. 그는 “국내 실물 부문은 자원을 최대한 집중하고 개발시켜 글로벌 플레이어가 됐다”면서 “금융 부문에서도 세계적인 회사가 나올 수 있도록 자원을 집중하고 육성하자”고 말했다. 이제 은행은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 과거처럼 상징적인 해외 점포가 아니라 당당하게 외국시장에서 현지 기업과 현지들을 상대로 돈을 벌어야 한다. ‘글로벌 플레이어’로의 변신이 은행들의 ‘도약’을 약속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은행권의 해외 진출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2006년 3월 말 현재 국내 은행들의 해외점포 수는 지점 64개, 현지법인 24개를 포함해 총 88개로 총 24개국에 진출해 있다. 그러나 대부분 외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이 영업 대상이다. 제대로 된 ‘해외 영업’을 한다고 보기 힘든 수준이다. 지난해 국내은행 해외지점이 벌어들인 이익은 총 4억달러 안팎. 국내 은행 총 당기순이익 13조4,000억원의 3% 정도에 불과하다. 결국 올해 들어 시중은행은 물론 국책은행들까지 해외 진출 확대를 선언했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나눠 먹을 ‘파이’의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국내 은행의 총자산 증가율은 지난 2002년까지 평균 10%대를 넘었지만 이후 10% 미만으로 낮아졌다. 은행영업의 핵심인 순이자마진(NIM)도 지난해 2.52%로 전년 2.62%에 비해 0.1%포인트 떨어졌다. 돈이 될 만한 시장이면 앞 다퉈 달려드는 ‘쏠림현상’ 역시 계속돼 과열 양상을 보였던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금융감독당국이 총량을 규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은행간의 무한 경쟁은 경제 상황에 따라 대규모 부실대출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다. 새로운 시장이 필요해진 것이다. 국제투자은행으로 진로를 잡은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는 “국내 금융시장은 이제 포화상태에 달했고 은행들의 규모도 비약적으로 커졌다“며 “모든 은행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해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물론 해외시장 진출 역시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기업이나 현지 교민 대상 위주의 영업 행태가 지속될 때 발생하는 국내 은행간 과잉 경쟁이다. 지금까지 해외점포는 국내 기업들이 진출했거나 교민들이 밀집된 지역 위주로 확대돼왔다. 영업 대상을 넓히지 못할 경우 해외 시장은 ‘블루 오션’이 될 수 없다. 이건범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은행 해외점포의 영업활동이 아직 현지진출 국내기업과 현지교민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이들 지역에 점포가 집중되면서 국내 은행들끼리의 과잉경쟁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은행들이 주로 진출하는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 등 신흥개발도상국의 각종 규제와 법률 시스템의 미비, 인력 활용 등에도 대비해야 한다. 90년대 초 동유럽 국가에 진출한 이스라엘의 한 은행은 현지 경영자의 방만한 여신운용으로 부실자산이 급증해 은행을 청산한 사례가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독일계 대형은행이 동유럽 국가의 기존 은행을 6,000만달러에 인수했다가 현지인 딜러의 한도 외 불법외환거래 누적에 따른 대규모 손실로 진출 1년여 만에 단돈 1달러에 은행을 다시 매각한 적도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따라서 국내 은행의 해외 시장을 ‘제2의 수익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해외점포의 현지화 전략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금융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국내 은행의 해외진출 전략은 ‘기존점포의 현지화’와 병행돼 추진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기존 점포들이 ▦현지 채용인력에 대한 인사상 동기 부여를 통해 ‘인력의 현지화’를 이루고 ▦현지 기업 및 현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방위 영업으로 ‘영업의 현지화’를 정착시키는 한편 ▦시장별 상황에 맞는 ‘상품 및 서비스 현지화’까지 완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동창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은행들은 앞으로 현지 기업과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미지의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며 “현지화 추진전략을 통해 해당 지역의 영업과 심사 및 위험관리 등에 대한 합리적인 절차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은행들의 적극적인 해외진출을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규제 완화와 정부차원 인재 육성, 금융 부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강조되고 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그동안 금융산업이 실물경제의 보조자 정도로 인식돼 금융회사의 활동영역이 국내로 한정됐다”며 “앞으로는 금융산업을 독립적인 산업으로 바라보고 중국ㆍ인도 등 신흥시장에 진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책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제는 은행들의 규모나 수익성이 해외 점포나 현지법인이 부실화되더라도 본점이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커졌다”며 “은행이 해외시장에 진출할 때 일일이 정부 승인 등의 절차를 받는 것부터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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