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순(53ㆍ가명)씨는 30년 가까이 근무하던 중견기업이 경영난에 처하면서 3년 전 구조조정을 당했다. 평소 지병을 앓고 있는 노모의 병원비를 위해 이미 퇴직금을 중간정산한 터라 김씨가 퇴직금조로 손에 쥔 돈은 불과 3,000만원. 중학교에 재학 중인 자녀와 노모 등 네 식구의 생계가 막막했던 김씨는 은행에서 4,000만원을 추가로 대출 받아 프렌차이즈 피자집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창업 초기에는 각종 가맹비 및 금융비용을 제하더라도 매월 최소 300만원가량의 순익이 보장됐다. 하지만 이내 김씨 가게 주변으로 비슷한 업종의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매출이 40%씩 급감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프렌차이즈회사에서는 물가상승으로 식재료비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매년 가맹비를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자녀 교육비와 생활비는 물론 가게를 운영하다 때때로 적자가 날 때마다 김씨는 저축은행과 카드사ㆍ대부업체 등에서 소액으로 신용대출을 받아 자금을 융통했다. 빚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김씨의 부채는 결국 7,000만원으로 늘어났다. 최근에는 연체이자조차 제때 상환하지 못하는 지경에 처한 김씨는 결국 채무불이행자가 됐다.
자영업자 720만명 시대. 자영업자 대출이 시중은행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금융위기로 노동시장에서 이탈했던 인력들이 속속 자영업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를 놓칠세라 시중은행들도 경쟁적으로 자영업자들의 창업자금 대출 수요 확보에 나서면서 최근 수년간 자영업시장 확대에 기름을 부었다.
무리한 규모 확대 경쟁은 결국 부실로 이어졌다. 경기침체로 경영난을 겪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하며 곳곳에서 부실이 발생하고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도 껑충 뛰었다. 문제는 경기에 민감한 자영업의 특성상 향후 경기흐름에 따라 대량 부실화의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다중채무의 늪에 허덕이는 자영업자들=경기침체로 경영난에 시달리거나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하면서 다중채무자 중 자영업자들의 비중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개인신용정보업체인 코리아크레딧뷰로(KCB)에 따르면 다중채무자들이 금융권에 상환해야 할 전체 부채 잔액 가운데 자영업자나 무직자가 차지하던 비중이 크게 증가해 지난 5월 처음으로 50%를 돌파, 50.3%로 집계됐다.
시중 금융권의 부실채권 중 절반가량은 자영업자의 몫이라는 얘긴데 최근 수년간 자영업자 대출을 경쟁적으로 늘려온 은행들의 책임도 있다.
실제 금융감독원의 집계에 따르면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5월 말 현재 164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올 들어서만 6조3,000억원(4%)이 증가해 지난해 같은 기간(3조6,000억원)을 한참 웃돌았다. 자영업자 대출은 2009년 이후 적게는 한 해 5조원, 많게는 13조원씩 늘고 있다.
부실대출도 늘고 있다. 5월 말 연체율이 1.17%로 지난해 말에 비해 0.37%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 연체율(0.97%)을 크게 웃돈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말까지 0.8%대를 기록하다 올 1월 1%를 돌파한 뒤 계속 오르고 있다.
◇금융 당국 가계대출 억제 '풍선 효과'=최근 자영업자 대출 부실 문제는 금융 당국의 가계대출 억제정책에 따른 풍선 효과라는 지적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금융 당국은 지난해 가을 이후부터 시중은행에 가계대출 확대 자제를 요구해왔다.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시중은행들은 고민에 빠졌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들이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을 이유로 다량의 현금을 쌓아두며 은행들에 대한 대출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다. 중소기업 대출은 리스크 위험이 높아 섣불리 볼륨을 확대할 수 없었다.
결국 시중은행들은 가계대출 중 자영업자 대출을 확대하며 활로를 모색했다. 자영업자 대출은 규모가 건당 1억원 안팎이라 중소기업 대출보다 리스크가 작다고 판단했다. 실제 최근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이 많이 상승했다고는 하지만 3% 안팎의 중기대출 연체율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아울러 자영업자 대출은 심사 과정도 비교적 간편하기 때문에 은행 영업부서에서도 손쉽게 실적쌓기용으로 자영업자 대출에 매달렸다.
일부 시중은행들의 경우 2007~2008년부터 일찌감치 '프렌차이즈론'을 출시, 가맹점주들을 대거 차주로 확보하며 자영업자 대출의 볼륨을 키워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자영업자 대출의 부실위험을 경고하고 나선 금융 당국의 행보에 시중은행들은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 당국이 가계대출에 이어 자영업자 대출까지 옥죌 경우 은행들이 더 이상 자금운용처를 찾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하며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이 아직까지는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라며 최근 논란에 대해 선 긋기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이다.
◇자영업자 대출 부실 뇌관 카운트다운=시중은행들의 입장과 달리 관련 전문가들과 금융 당국은 자영업자 대출의 잠재적 부실에 바짝 긴장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유럽발 재정위기 및 국내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라 자영업자 대출의 대량부실이 가시화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자영업자들의 대부분이 경기에 가장 취약한 업종에 집중돼 있다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신규 자영업자 대부분은 저부가가치산업으로 꼽히는 숙박음식업ㆍ도소매업ㆍ건설업 등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포화시장)'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5월 말 현재 숙박음식업의 자영업자 비중은 30.9%에 달하며 도소매업의 자영업자 비율도 34.5%로 파악됐다.
특히 자영업자들은 소득이 일정하지 않아 대출금 대비 상환능력이 근로소득자들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정규직 종사자들의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중은 78.9%로 조사됐다. 반면 자영업자들은 159.2%로 가처분소득보다 금융부채 비중이 더 높은 상황이다.
LG경제연구원의 이건우 박사는 "급여소득자처럼 일정한 소득이 보장돼 있지 않은 자영업자는 경기부진에 따른 매출둔화가 지속될 경우 대출 상환이 어려워지면서 부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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