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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11월4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스페인 마드리드의 렙솔 본사에서 안토니오 브루파우 회장과 얼굴을 맞댔다. 바로 1년 전 서울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비즈니스 서밋에 함께 참석한 적은 있었지만 이날은 사업상의 논의를 위한 만남인 만큼 깊숙한 대화가 오갔다. 둘의 논의는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양사는 윤활기유 공장을 함께 짓기로 전격 결정했다.
그리고 22일(현지시간) 최 회장은 스페인 카르타헤나 공장의 준공식에 참여해 4년 전 성사시킨 사업의 결실을 확인했다.
최 회장은 이어 '제2의 렙솔'을 찾기 위해 네덜란드·스위스도 잇따라 방문할 예정이다. 유럽 윤활유 시장의 길을 열어 준 렙솔처럼 반도체·에너지 분야에서 함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파트너를 찾겠다는 각오다.
SK그룹은 최 회장이 22일 카르타헤나에서 윤활기유 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이미 지난해 9월 준공된 공장이지만 업황 부진에다 최 회장의 부재까지 겹쳐 그동안 열릴 수 없었던 준공식이 1년 만에 열린 셈이다. 최 회장은 축사를 통해 "스페인과 한국 기업 간 사상 최대 규모의 합작 사업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며 "SK·렙솔이 글로벌 석유업계에서 주목받는 합작 모델을 만들었다는 의미도 깊다"고 감회를 얘기했다.
카르타헤나 공장은 SK루브리컨츠와 현지 1위 에너지기업 렙솔이 7대3의 지분으로 설립한 합작사 '일복(Ilboc)'이 운영한다. 양사는 3억3,000만유로(약 4,700억원)를 들여 유럽 최대 규모(연 63만톤)로 공장을 지었다. 현재 가동률이 100%에 이를 만큼 수요도 많다. 이곳에서 생산된 윤활기유는 유럽의 주요 윤활유 제조사로 보내져 윤활유의 원료로 쓰인다.
이날 4년 만에 다시 만난 최 회장과 브루파우 회장의 협력 강화 방안은 훨씬 폭이 넓어졌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이번 사업은 양사 간 협력의 시작"이라며 "석유·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협력 기회를 발굴할 것"이라고 말했다. 렙솔은 윤활유 외에도 석유개발 등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어 SK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브루파우 회장 역시 "SK와의 파트너십을 계속 발전시킬 것"이라고 화답했다.
최 회장에게 렙솔은 유럽 윤활유 시장의 판로를 열어 준 중요한 파트너다. SK루브리컨츠는 앞서 울산, 인도네시아 두마이 공장에서 윤활기유를 생산해왔다. 여기에 카르타헤나 공장까지 총 3개 공장에서 연 350만톤의 윤활기유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엑손모빌·쉘에 이은 세계 3위로 업체로 도약했다. 특히 최 회장이 직접 브루파우 회장과 만나 설득 작전을 펼친 끝에 단독으로 공략하기 어려운 유럽의 고급 윤활기유 시장까지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최 회장은 이달 말까지 유럽에서 강행군을 이어갈 계획이다. 제2의 렙솔을 위한 씨앗을 뿌린다는 차원이다. 그는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L를 방문, 반도체 제조장비 공장을 둘러보고 최고경영진과 협력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SK그룹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반도체 분야 투자를 급격히 늘리고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세계 3대 석유 트레이딩 회사 중 한 곳인 트라피규라의 클로드 도팽 회장 등과 면담도 예정돼 있다. 최 회장은 유럽에서의 일정을 소화한 후 귀국할 예정이다. 일정 변동으로 인해 지난 광복절 특별사면 후 처음으로 맞는 명절을 타지에서 보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의 한 관계자는 "각 그룹사마다 해외 기업과 손잡고 현지에서 투자하는 전략을 확대하고 있다"며 "최 회장의 이번 유럽 출장 역시 이 같은 '유럽 인사이더' 경영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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