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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사이드] 사회의 무관심속 19년간 "日정부 사죄하라" 한맺힌 외침

위안부 할머니들 '수요집회' 내달 14일 1000회<br>등록된 피해자 234명 중 169명은 이미 세상 떠나<br>한·일 정부는 여전히 미온적<br>정대협, 평화비 건립 계획

9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995차 수요집회에 참석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사진 왼쪽부터) 강일출, 김복동, 이옥선 할머니가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이런 것 좀 안 했으면 좋겠어."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을 지나던 한 젊은 직장 여성이 잔뜩 찡그린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같이 있던 동료들도 영 마땅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갈 길을 재촉했다. 그들이 싫어하거나 혹은 관심조차 보이지 않은 '이런 것'은 다름아닌 매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다. 이 집회가 오는 12월 14일이면 1,000회를 맞이한다. 딱 한달 남았다. 수요일이다. 침묵하는 그들의 입처럼 굳게 닫힌 주한일본대사관 철문을 향해'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어김없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지난 19년은 인내의 시간이었다. 잊고 싶은 과거를 한 주마다 되새김질 해야 했기에 그렇다. 또 세계에서 제일 오랫동안 열리는 집회로 기네스북에 올랐지만 그 사이 169명의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들에게 횟수를 거듭하는 집회가 한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한을 조금이나마 풀고자 할머니들이 또다시 모였다. 뜻을 같이하겠다는 이들도 어김없이 도착했다. 처음에는 열 명 남짓이었지만 시위가 시작할 때쯤에는 백 여명으로 늘어났다. 집회 참가자가 늘어나는 것과 동시에 왕복 이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그들을 지켜보는 경찰들도 대열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이날 시위에 모습을 드러낸 강일출, 김복동, 그리고 이옥선 할머니는 얇은 방석 하나만 놓인 간이의자에 곧 쓰러질 것 같은 노쇠한 몸을 기댔다. 이옥선 할머니는 마스크에 장갑까지 필요할 정도로 찬 기운을 견디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주변 건물이 만든 그늘과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뜨겁게"일본 정부는 사죄하라"라고 외쳤다. 다행히 할머니들의 외침은 외롭지 않았다. 다양한 사연과 이유로 이곳을 찾아 함께 목소리를 높인 사람들이 있어서다. 이날 정장차림으로 집회에 참가한 채혜진씨는"회사가 근처에 있어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시 들렀다"고 말했다. 그는 험난한 시절을 보내고 묵묵히 반성을 요구하는 할머니들을 보면 자연스레 삶에 대한 용기가 샘솟는다고 했다. 할머니들이 고백하는 과거가 수치스럽다며 '뜯어말리려'왔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지원군으로 돌아선 백발의 남성도 있었다. 그는 "우리가 상상도 못할 만큼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과거를 이 할머니들이 길 바닥에서 이렇게 얘기하게 만든 것, 결국 국가의 잘못이다"라며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수능 예비소집일이기도 했던 이날은 유독 고등학생들이 많이 찾아왔다. 이곳에 온 학생들은 근현대사 과목에서 5분 남짓 다루고 지나간다는 '위안부' 문제를 숨쉬고 꿈틀대는 역사로 받아들 일 수 있었다. 제일 먼저 집회 장소에 도착한 학생들은 독산고 역사동아리 한뉘깨단 회원들이었다. 회장을 맡고 있는 김호연(18)양은'한평생 잊고 살던 일을 깨닫게 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아리 이름처럼, "할머니들의 아픔을 절대 잊지 않고 다른 학생들에게도 많이 알려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선아 선생의 근현대사 수업을 듣는 서울사대부고 2학년 여학생들은 손수 만든 피켓을 들고 와 할머니들을 든든하게 했다. 이들 가운데 강수아 학생은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무관심하다고 생각한다"며 "역사문제는 제대로 매듭짓지 않았던 정부의 잘못이 크다"고 말했다. 시위가 끝날 쯤 사대부고 학생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알리겠다고 약속했다. 수요집회가 눈엣가시처럼 느껴질 수 있는 일본인들도 함께 했다. 구라모토씨는 "정부가 할머니들께 사죄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에 분노와 수치심을 느꼈다"며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 해에도 몇 차례 집회에 참가한다는 일본인 A씨는 "일본의 태도는 시위 현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며 "정부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한국과 일본에서 민간 차원의 교류가 활발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웨덴에서 한국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위안부'문제를 알게 된 린다씨도 "믿을 수 없는 끔찍한 일"이라며 부디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아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 김학순 할머니가 지난 1991년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제 인생은 열여섯 꽃다운 나이로 끝났습니다"라고 고백하기 전까지 우리 사회는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외면해왔다. 고통스러운 과거를 감내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피해자 개인의 몫이었다. 용기를 낸 할머니들이 사죄와 보상을 요구한 지 19년, 올해가 지나면 스무 해가 되는데도 이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할머니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물론 지금껏 침묵으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다. 하지만 할머니들을 더 가슴 아프게 만드는 것은 우리 사회의 무관심이다. 국민의 아픔을 보듬어야 할 정부는 그 동안 한일협정에서 차후 배상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입장을 무르기 어렵다며 미온적으로 대응해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물론 정부는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달 방한한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무성 장관에게 배상청구권 소멸 여부를 두고 양자 협의를 제안하는 등 노력을 하고는 있다. 하지만 그나마 이 정도의 대응은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위안부 배상문제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한 후에 나온 것이다. 헌재도 비난을 피해갈 수는 없다. 헌법소원이 제기된 것은 2006년이지만 5년이 지나서야 매듭이 지어졌다. 사회의 무관심 속에 할머니들은 고단한 삶을 차례로 내려놓고 있다. 피해자 평균연령이 86세인 점을 감안할 때 당연한 수순이다. 지난 9일 열린 제995차 수요집회도 태국에서 91세의 나이로 사망한 노수복 할머니의 명복을 비는 것으로 시작했다. 한 달 전인 10월 13일에는 권모 할머니가 88세의 일기를 마감했다. 올해만 14명이 이승을 떠났다.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는 234명이지만 남은 사람은 65명뿐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수요집회를 19년간 꾸준히 진행해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은 1,000회를 맞는 12월 14일을 기념해 매주 할머니들이 앉는 자리에 평화비를 세울 예정이다. 조각가 김운성 김서경씨가 디자인한 평화비는 높이 120cm로 일본에 끌려갔을 당시 피해자들을 형상화한 소녀 모양의 비석이다. 또 정대협은 대사관 앞 거리를 평화로로 이름 붙이고 전국의 학생들이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배울 수 있도록 '위안부'배움주간 캠페인을 벌인다는 계획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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