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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전 강영원 석유공사 사장은 처실장 등 간부 몇 명만 불러모아 조촐한 작별인사를 한 후 회사를 떠났다. 대우인터내셔널 사장 출신으로 '강 대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해외 자원개발 업무에 매진하던 강 사장의 퇴직 자리 치고는 너무나 초라했다. 그는 정권 말 정부의 경영평가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며 사표도 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석유공사의 한 관계자는 "4월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이어 최근 기획재정부의 경영평가에서 D등급을 받은 것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역대 사장 중 퇴임식도 없이 퇴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직원들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정권 말 공기업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대규모 공백 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강 사장의 퇴진과 김신종 광물자원공사 사장의 특혜 시비 등 잇따라 사건사고가 터지면서 정권이 바뀌기 전에 CEO 임기가 돌아오는 공기업들은 사람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가뜩이나 정권 교체로 임기도 보장 받기 어려울 판에 기존 CEO들마저 줄줄이 불명예퇴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 산하기관 가운데 공석이거나 교체 대상인 공기업 사장 자리는 10여곳을 훌쩍 넘고 있다.
지식경제부 산하에서는 보령화학발전 사고로 4월부터 공석인 중부발전 사장 자리를 비롯해 한국광물자원공사(7월), 한국지역난방공사(9월), 한국가스공사(10월), 한국남동발전(10월) 등의 CEO 교체가 예고돼 있다. 국토해양부 산하에서는 한국공항공사(8월), 인천공항공사(9월), 부산항만공사(7월), 수자원공사(7월) 등의 CEO 임기가 조만간 만료된다.
정부 안팎에서는 이들 CEO 자리가 과연 누가 오겠느냐는 회의론이 부상하고 있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아 반년짜리 사장이 될 가능성이 큰데다 최근 주요 공기업들의 실적이 정부로부터 철퇴를 맞으면서 공기업 사장의 역할에 대한 회의론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한국수력원자력의 경우 한 차례 사장 공모를 실시했으나 적임자를 찾지 못해 재공모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경부 공무원 출신의 김균섭씨가 사장으로 임명됐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낙하산 인사에 불과하다는 냉소 섞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유력 후보였던 김신종 사장은 광물자원공사에서의 불미스러운 일로 낙마하고 말았고 또 다른 후보였던 오영호 KOTRA 사장은 재임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 후보에서 제외됐다. 청와대는 그만큼 한수원 사장을 고르는 데 애를 먹었다.
공기업 인사에 밝은 정부의 한 관계자는 "유력 후보들은 대부분 대선 이후에나 움직일 것으로 보이고 반년짜리 사장에 공모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권 말까지 공기업들의 대규모 경영 공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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