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조1,700억원. 정부가 지난해 주요 수입 품목에 대해 할당관세를 적용해 깎아준 세금 총액(추정치)이다. 품목 수도 무려 110개에 이른다. 지난 2011년에도 123개 품목에 대해 할당관세가 적용됐다. 그해 물가가 급등하자 상반기 일몰될 예정이던 35개 할당관세 품목의 시한을 연장하고 14개 품목을 신규 지정한 탓이다.
이처럼 물가가 급등할 때마다 정부는 할당관세 카드를 빼 들었고 연간 최대 1조원대의 세수가 축났다. 물가안정을 위해 국민이 치른 국가적 비용이다.
하지만 올 들어 사정이 바뀌었다. 물가가 2%를 밑돌면서 이제는 인플레이션보다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정도다. 무엇보다 나라곳간이 걱정이다.
정부가 이달부터 연말까지 할당관세 품목의 대대적인 구조개편에 나서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물가를 잡기 위해 과도할 정도로 할당관세를 넓게 적용했다"며 "생필품 가격 상승 압력이 누그러든 만큼 할당관세도 평시로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작성 중인 할당관세 '살생부'에 이름을 올릴 품목은 주로 관세 인하에 따른 물가안정효과가 미미하거나 세수 감소를 과도하게 초래하는 제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의 할당관세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할당관세 적용 품목 중 통계청 소비자ㆍ생산자물가지수 품목인 65개의 가격을 분석한 결과 무려 27개 품목에서 가격 하락 및 가격 안정효과가 없었다.
특히 이들 품목 중 소비자물가지수 품목 13개에 대해 보고서는 "유통 단계를 거친 후에 가격이 오히려 올라간 결과"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깎아준 관세 할인효과를 유통업자 등이 중간에 '꿀꺽'해 자신들의 마진으로 챙기고 소비자에게는 가격을 올려 팔았다는 뜻이다.
정부는 이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도록 할당관세 품목의 소비자가격 동향 등을 철저히 모니터링할 방침이다. 아울러 올해 국회 국정감사 시즌까지 할당관세 신규 지정 절차 등을 한층 엄격히 하는 방안을 보고할 계획이다.
국회에서도 할당관세 품목 지정 요건을 강화하는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조정식 민주당 의원은 최근 할당관세 품목 지정시 국회 심의ㆍ의결을 거치도록 하는 내용의 관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할당관세 지정이 시행령 개정사항이어서 정부가 국회 동의 없이 자의적으로 운용하고 있다는 비판에 따른 조치다.
다만 할당관세에 대한 지나친 규제는 실이 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할당관세 적용 품목 선정시 문제가 되는 것은 업계 로비 등에 따른 부당선정인데 따지고 보면 정부보다는 정치인이 로비에 휘둘릴 가능성이 더 크다"며 "할당관세 선정ㆍ폐지권한을 국회가 가져가면 로비력이 큰 이익단체가 요구하는 품목이 수혜를 받게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물가안정을 위해 시급히 조정해야 할 할당관세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정쟁으로 지연될 경우 정책효과가 훼손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따라서 할당관세 운용은 정부에 맡기되 선정 과정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는 이와 별도로 탄력관세제도의 주축을 이뤘던 잠정세율(2007년 4월 폐지)을 되살리는 방안도 저울질하고 있다. 조세연구원 측도 정부 용역보고서를 통해 "과거 잠정세율을 신설한 이유는 급격한 관세 인하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일시 부과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며 "현재도 기본세율보다 낮은 잠정세율을 통해 점진적으로 기본세율 인하로 연계시키기 위한 중간 과정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