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성의 한 요양병원에서 불이나 입원환자 20명과 간호조무사 1명이 숨지는 참사가 또 발생했다. 지난 4월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서울 지하철 추돌 사고, 경기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사고에 이어 대형 사고로만 벌써 4번째다. 대형참사가 두 달도 안 돼 4개나 잇따라 터진 것이다. 작은 사고들까지 치면 대한민국에 과연 안전지대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국민들은 매일 불안과 걱정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8일 0시27분께 장성군 삼계면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 별관 건물 2층에서 불이 나 정윤수(88)씨 등 입원환자 20명과 간호조무사 1명 등 모두 21명의 아까운 목숨이 희생됐다.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4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다시 2분 만인 0시33분에 큰 불을 잡고 0시55분에 잔불 정리를 완료했지만 입원 환자들이 대부분 거동이 불편해 대피하지 못하는 바람에 21명이 숨지는 참사를 막지는 못했다.
효사랑요양병원에는 불이 나면 자동으로 물을 뿜어 화재를 막아주는 스프링클러는 아예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 병원은 이달에만 안전점검을 2차례 받았지만 '이상 없음' 판정을 받았다. 최근 연이은 참사와 마찬가지로 인재요인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고는 방화라는 화재 원인만 빼놓고는 4년 전 경북 포항의 인덕노인요양센터 참사와 판박이다. 지난 2010년 11월 전기합선으로 발생한 인덕노인요양센터 화재는 10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7명을 다치게 했지만 스프링클러는 없었다. 이후 정부는 노유자 생활 시설에 바닥면적에 관계없이 간이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관련 법안을 개정했다. 그러나 센터와 같은 노유자 생활 시설과 달리 요양병원은 의료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만약 정부가 당시 법안 개정시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에 요양병원도 포함시켰다면 효사랑요양병원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당시 스프링클러 설치가 됐더라면 이번과 같은 참담한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노유자 시설은 사회복지시설이고 요양병원은 병원이다 보니 각각 법도 달라 빚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뒤늦게 복지부가 연면적 300㎡ 이상인 요양병원이 스프링클러 또는 간이 스프링클러 설비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방재청에 소방시설 설치ㆍ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지난 2월 입법예고까지 됐지만 마지막 관문인 국무회의 등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허술한 안전점검도 화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9일 병원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안전점검과 21일 보건소가 한 현장점검은 화재로 인한 질식사고 위험 위험요인을 잡아내지 못했다. 복지부는 지자체에 안전점검 체크리스트만 보냈을 뿐 점검 결과조차 아직 챙기지 못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사무관 등 4명의 실무자가 3,000곳이 넘는 병원급 시설을 다 점검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특히나 전남 지역은 세월호 참사로 원래 5월28일인 안전점검 실시 결과 보고 기한을 6월2일로 유예해줬다"고 설명했다. 모의소방훈련은 소방서 인력부족으로 6월에 실시할 예정이다. 특히 요양병원의 경우 출구가 하나이고 창문에는 쇠창살이 설치돼 있어 화재 등이 발생하면 빠져나가기가 어려운 데도 불구하고 환자들을 상대로 한 대피훈련 등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턱없이 부족했던 간호인력도 문제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사고 당시 별관에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79명이나 있었지만 간호인력은 간호사 1명, 간호조무사 2명이 전부였다. 화재가 나자 불을 끄려고 한 이도 간호조무사 혼자였다. 의료법은 환자 200명당 야간 당직 의사 1명, 간호사 2명을 배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병왕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실환자 수가 300명이 좀 넘는 효사랑요양병원은 의사 2명, 간호사 4명이 야간 당직을 섰다면 현행법상 기준은 충족시킨다"면서도 "특히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보살피는 (의사 및 간호사) 인력 기준은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세종=임지훈ㆍ임진혁ㆍ정혜진 jhl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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