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의 한 고위관계자는 요즘 자기자본이익률(ROE)만 생각하면 고민이 많다. 지난해까지는 ROE 8%선을 지켜냈지만 각종 수수료 인하와 가계부채 해결을 위한 정부 정책협조를 감안하면 올해는 7%대로 내려앉을 것으로 예상되는 탓이다. 시장금리 3%에 주식 투자에 따른 위험률 3~4%포인트를 감안하면 ROE가 7%대인 종목은 살 이유가 없다. 유동성 장세에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언제 투자자들이 마음을 바꿀지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금융회사에 공적 임무 강화를 요구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수익과 공적기능 간 균형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융사의 건전성이 나빠지고 저금리에 따라 기본적으로 금융사의 수익력이 낮아진 상황이다. 문제는 속도다. 서민금융지원과 대출금리ㆍ수수료 인하, 카드 가맹점수수료 변경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그것도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그동안 금융사들이 편하게 높은 수익을 내온 것은 맞지만 균형점이 너무 급격하게 이동하는 것은 자칫 금융사의 부실을 불러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나친 공적기능 부여…수익 급감=금융계에서는 은행이나 카드업 같은 금융업이 사실상 공익사업이 됐다는 말이 나온다. 은행은 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와 수수료에서, 카드는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에서 돈을 번다. 그런데 금융감독 당국과 정치권은 대출금리와 수수료 인하를 줄기차게 요구한다. 금융사들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금융권은 국민행복기금이나 하우스푸어 대책에 따른 자산유동화가 이뤄지면 싸게 대출채권을 팔고, 유동화증권을 매입해 양쪽으로 손실을 봐야 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정치금융'이 가져온 부산물이다.
실제 수익성도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신한ㆍKBㆍ우리금융의 지난해 순이익은 전년 대비 20~30%가량 급감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11년 3조2,000억원대의 최대 실적을 냈던 신한은 지난해 2조3,000억~2조4,000억원 수준으로 내려앉을 것으로 보이고 KB와 우리금융도 각각 5,000억원과 7,000억원 안팎 순익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카드업도 마찬가지다. 현대카드와 KB국민카드는 지난해 순이익이 전년보다 약 20~30% 줄어들 것으로 보이고 삼성카드는 지난해 4ㆍ4분기 적자를 냈다. 저금리에 고생하고 있는 보험사들도 수익성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하락에 따른 부실로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는 상호금융권과 저축은행 등도 앞날이 어둡다.
◇금융사 부실화…투자자 이탈 부른다=대형 은행은 ROE가 10~12%는 돼야 한다. 총자산순이익률(ROA)로 따지면 1% 안팎은 돼야 한다. 자산이 200조원이 넘는 거대 금융그룹은 1년에 1조~2조원은 벌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유는 부실 때문이다.
금융사들은 굴리는 자산 규모가 커서 순이익 규모도 절대치로 보면 많다. 하지만 이렇게 번 돈의 상당 부분은 자본을 확충하는 데 써야 한다. 금융감독원이 SC은행의 2,000억원 배당을 막는 것도 적정 수준의 배당은 필요하지만 금융위기임을 생각할 때 상당 부분은 내부유보를 해 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누누이 강조하는 중소기업 대출을 위해서라도 자본확충은 필수다. 지나친 공적기능 강화는 금융사 부실과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을 부른다는 점에서 간단히 넘길 문제가 아니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중소기업 전문은행인 기업은행은 최소 매년 5,000억원에서 8,000억원은 순이익을 내야 한다고 본다. 정부 배당과 내부유보를 감안하면 이 정도는 벌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보다 추가로 금리를 낮추거나 퍼주기 식으로 대출을 늘리면 이마저도 달성하기가 어렵다. 기업은행은 2011년에만 정부에 3,735억원을 배당했다.
특히 주요 금융지주의 1대 주주는 국민이 주인인 국민연금이다. 연금은 하나(9.35%), KB(8.58%), 신한(7.52%)의 제1주주다. 주주 이익훼손은 국민들의 이익침해로 이어지는 셈이다.
투자자 이탈문제도 있다. 공적기능만 중시하고 수익이 계속 줄면 외국인 투자가들이 등을 질 수 있다. KB와 신한ㆍ하나금융은 외국인 투자가 비율이 60%가 넘는다. 지금은 전세계적인 유동성 장세로 크게 문제가 없지만 어느 순간 외국인 투자가들이 우리나라 은행주를 팔기 시작하면 패닉이 올 수 있다는 불안감이 금융권 관계자들 사이에 퍼져 있다.
금융권의 고위관계자는 "금융사들도 예전보다는 수익성을 낮춰 잡아야 하고 공적 역할을 강화해야 하는 것은 대세지만 문제는 속도와 범위"라며 "정부나 정치권이 지나치게 금융에 간섭하다 보면 산업 자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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