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권의 관심이 온통 재보궐 선거로 쏠려 있던 26일 아침. 국회에는 5권짜리 두툼한 보고서가 등장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예정처)가 내년에 국가가 쓸 326조1,000억원의 예산안을 분석한 보고서다. 국회 예정처의 조사관들이 밤새워가며 수조원 단위에서 수백만원 단위까지 잘못 쓰인 경우가 없는지 세밀하게 들여다본 결과물이다. 당연히 예산심의를 하는 국회의원에게는 중요한 참고자료다. 국가운영은 예산으로 드러나고 국회는 예산심의로 정부를 감시한다. 그런 국회의원을 돕는 예정처 보고서는 예정처의 존재 이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들은 매년 참고하던 이 자료를 올해는 넘겨보지도 못한 채 예산 심의를 끝내버렸다. 평소 예산심의를 하기 2주 전에 보내주던 보고서를 이번에는 당일인 24일 아침에야 받았기 때문이다. 500여억원의 저소득층 일자리 사업의 행정안전부나 오는 2012년 선거를 앞두고 뻥튀기 예산을 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피해자 인권보호를 위한 진술녹화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경찰청, 생명을 건 소방공무원에게 장비조차 지급하지 않은 소방방채청 등 갖가지 문제를 비판한 보고서가 그대로 사장된 셈이다. 나머지 15개의 상임위도 하루 이틀 전 간신히 보고서를 받았다. 올해는 국회가 평소보다 예산심의를 일찍 시작했다. 여야 모두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예산심의를 제때 끝내고 지역구 관리를 하자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매 국회마다 대부분 마지막 해 예산심의는 빨라지고는 했다. 예정처가 예상하지 못할 사태는 아니다. 특히 예정처가 보고서를 낸 날짜는 괜한 의심을 낳게 한다. 이명박 정부 정책의 각종 문제를 들춰낸 보고서를 선거 전에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정치권과 언론 등 모두의 관심이 분산된 투표 당일 내놓은 것이다. 당초 투표 이틀 전에 발간하기로 했다 늦춘 것이어서 더더욱 개운하지 못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