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값 폭등을 시작으로 전반적인 생활물가 급등 조짐이 나타나면서 농산물 가격상승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애그플레이션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이 확산되고 있다. 대형마트은 물론 재래시장까지 공급량 부족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가공식품류의 가격인상 예정 등 물가 상승요인들이 잇따르고 있어 서민들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주부들 그저 가격표만 바라볼 뿐=1일 오후 롯데마트 서울역점 청과코너는 카트를 앞세운 주부들은 많았지만 정작 물건을 담는 주부들은 드물었다. 양상추를 집어 들고 한참 직원의 설명을 듣던 한 주부는 “그래도 너무 비싸다”며 그냥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이 코너의 직원은 “요새 몇몇 채소를 쿠폰 행사로 팔고 있는데 예전보다 쿠폰을 챙겨오는 고객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조금이라도 싸게 채소를 사기 위해 손님들이 다소 귀찮은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그림참조 실제로 대형 마트에서 주요 신선식품 가격은 최근 1년새 말 그대로 ‘폭등’했다. 이마트에서 1년전 1,680원이던 배추 한 포기는 1일 현재 6,450원으로 무려 284%나 뛰었다. 양배추(1통)와 시금치(250~300g)도 이 기간 2배 넘게 값이 올랐고 1,100원대였던 무는 1달전 2,380원을 넘어선 후 현재 4,100원대로 올라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반 채소와 유기농 채소와 값 차이도 거의 없어졌다. 한 대형마트의 유기농코너 판매사원은 “파 한 단에 5,980원인데 같은 용량으로 따지면 유기농 파와 값이 같다”며 “상추 같은 몇몇 채소는 오히려 유기농 제품이 더 싸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형마트들은 부랴부랴 대책마련에 나섰다. 이마트는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난달 말 배추 한 포기 값을 1만1,500원으로 올리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종전의 6,450원선을 유지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중국에서 배추를 들여오는 것과 함께 주요 국내 산지의 채소물량 확보에 전력을 투구하고 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국내 농가에 대금을 사전 지급해 물량을 선점하고 채소류를 중심으로 할인행사를 늘려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재래시장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조덕준 송화시장 상인회장은 “예년 이맘때면 날씨도 선선해 손님이 모일 시기인데 요새는 비싼 채소값 때문에 몇 달 전 보다도 손님이 반 이상 줄었다”고 밝혔다. 그는 “값이 잠깐 올랐을 때는 상인회 차원에서 공동구매로 가격을 조절하기도 했는데 요새는 아예 산지 물량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 이마저도 힘들다”며 한숨지었다. ◇물량부족 단기간 해소 어려울듯=배추등 주요 채소류 가격이 지난 추석이후 폭등세를 보이고 나서 최근 다소 진정됐지만 가격 하락이 지속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상 기온 영향이 예상 보다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추의 경우 이달초 강원도 고랭지 재배 배추 물량 수확이 마무리되고 이후 포천·평택 등 경기도와 충남·전북·전남지역의 배추들이 나올 시기다. 하지만 경작지에서 당초 8월말~9월초에는 시작됐어야 할 파종이 더운 날씨와 태풍등의 영향으로 늦어져 지난달 중순이후에나 파종을 마친 곳이 많다. 김준기 농협하나로마트 채소담당자는 “요새는 상품 품질보다 물량확보가 더 문제”라며 “이달 중하순에 작황이 드러난 이후에나 가격상승세가 멈출수 있을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가격폭등은 산지에서부터 소매점에 이르기까지 물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 더욱 심각하다.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 매일 반입되는 채소류는 평소 보다 40%이상 줄었다. 물량이 없다보니 배추의 경우 결구(겹겹이 속이 차는 과정)도 되지 않고, 한 포기 평균 무게 3kg보다 1kg이상 덜 나가는 상품들이 반입되는 형편이다. 대형마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통배추 진열물량은 평소의 40%수준에 불과하고 최근 수요가 급증한 포장김치는 물량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최근 서울 한 점포에서 포장김치 업체에 1,000개를 주문했는데 이틀 뒤 들어온 물량은 400개에 불과했다”며 “재고가 바닥나거나 사재기현상이 발생한다면 가공품 가격도 안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불안 전방위확산 우려 = 상황이 이렇게 되자 외식업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식탁물가가 오르면서 외식이 늘어나고 있지만 현재 가격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업계의 관계자는 “가격이 폭등하기 전에 미리 확보해 놓은 물량이 있기 때문에 기존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장기간 버티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상, 풀무원 등 김치 업체들은 다음주 중 예정대로 최고 26.4%가량 포장김치 가격을 올리기로 했다. 조성진기자 김태성기자 kojj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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