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11월22일] 찰스 그레이 권홍우 편집위원 찰스 그레이(Charles Grey). 영국의 26대 수상이다. 윌폴과 필, 대(大)ㆍ소(小) 피트 등 명재상에 가려 있지만 영국의 정치경제사에 거대한 흔적을 남겼다. 가장 큰 업적은 선거법 개정. 귀족과 부유한 상공인들만 누렸던 투표권을 확산시켜 민주주주의 발전에 물꼬를 텄다. 1764년 귀족집안에서 태어나 22세에 정계에 입문, 해군성 장관ㆍ외무장관ㆍ하원의장을 거쳐 1830년 11월22일 수상 자리에 올랐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휘그당 안에서도 급진파로 꼽혔던 그는 집권하자마자 ‘강경’의 이미지를 던지고 당내 반대파는 물론 야당인 토리당 인물을 내각에 영입, 정국을 안정시켰다. 다음 과제는 참정권 확대. 선거법 개정이 기득권 세력에 막히자 그는 의회해산이라는 배수진을 치며 1832년 1차 선거법 개정을 이끌어냈다. 유권자가 전체인구의 4%에서 7%로 늘어나는 데 그치고 그나마 주택이 있는 도시민이나 세금을 내는 농민에 국한된 참정권 확대였지만 그레이의 정치개혁은 영국민주주의의 저변을 넓혀 1884년 3차 개정에서는 성인남자 전체가 투표권을 갖기에 이르렀다. 면직공장에서 9세 이하 아동의 고용을 금지하고 공장감독관 제도를 도입한 공장법(1833년)과 빈민구제법(1834년)도 그의 작품이다. 노예제를 폐지해 75만 노예를 해방한다는 선언은 미국의 남북전쟁, 노예해방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가 마련한 정치개혁ㆍ빈민 복지ㆍ노예해방이라는 토대에서 19세기 영국이 전성기를 누렸다는 평가도 있다. 그레이는 1834년 7월, 야당출신 각료들의 반란으로 수상직에서 물러난 뒤 1845년 생을 마감했으나 그의 이름은 찻잔 속에 녹여져 내려온다. 고급홍차로 손꼽히는 ‘얼 그레이’를 만들고 퍼뜨린 사람이 바로 그레이다. 입력시간 : 2006/11/21 17:02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