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아스팔트 빌딩숲, 왜소해지는 인간, 긴박하게 돌아가는 사람들의 무표정함 등 비인간적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전원은 낙원과 같은 곳으로 여기고 도시는 지옥과도 같은 곳으로 생각하는 두가지 사고방식이 오랜 역사를 통해 통념으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우울하거나 부정적인 공간이 아니다. 전 세계의 인구 중 60%가 도시에 살 만큼 이제 도시는 인류가 누리는 삶의 무대이자 그 속에서 삶을 꾸려가는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유기체다. 화려하고 웅장하게 포장된 도시의 외양을 걷어내면 활력이 넘치는 인간들의 삶이 드러난다. 카페에는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미소가 머무르고, 교실에는 개구쟁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눈부시다. 영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마크 기로워드는 중세시대부터 20세기까지 유명한 도시의 역사와 그 속에 있는 인간들의 삶을 조망한다. 비잔틴 제국의 전성기, 세계 최대규모의 사치품 쇼핑센터였던 콘스탄티노플로 시작해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한 베네치아와 제노바, 이탈리아의 상업도시를 거쳐 16세기 로마와 대서양의 무역도시, 17~8세기 암스테르담과 파리, 19세기 이래 산업도시로 번영을 구가해 온 런던ㆍ맨체스터ㆍ뉴욕 등 현대의 주요도시로 자리를 옮기면서 도시를 문화사적인 관점에서 풀어냈다. 저자는 건축학적인 측면의 도시와 인간의 사회ㆍ문화적 그리고 경제적 변화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경관을 바꿔온 배경에 집중한다. 책은 로마의 멸망으로 서유럽에서 북유럽으로 도시의 중심축이 이동하는 과정을 통해 도시의 역사가 생산력의 변화와 권력의 이동과 같은 궤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660년대 로마 교황청의 지나친 교회 증축으로 빚더미에 올라앉아 결국 파산하게 됐고, 잇달아 터진 종교개혁으로 도시는 점점 북유럽으로 옮아가게 된다. 암스테르담과 파리의 성공적인 도시건설은 북아메리카에 곧장 수출돼 보스턴 등 미국의 동부지역의 주요 도시는 유럽풍의 분위기를 간직하게 됐다. 저자는 시대별로 번성했던 산업과 교역의 역사 그리고 축제ㆍ결혼식ㆍ장례식ㆍ도박ㆍ매춘 등 도시의 겉과 속, 낮과 밤을 건축학적인 시선으로 그려냈다. 17세기 도시의 건축 조감도는 물론 미술관과 박물관에 소장된 명화들을 곁들여 도시와 인간의 삶을 조망한 저자의 인문학적인 감성과 설득력있는 글쓰기가 돋보인다. 마천루의 집합체인 뉴욕, 광고로 도배하다시피 한 도쿄, 성공적인 도시건설로 낭만과 예술이 숨쉬는 파리… 저자가 정의한 세계 유명 도시들의 얼굴이다. 지금 서울은 어떤 자화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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