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8월4일 뉴욕시 변두리 퀸스의 자메이카 거리. 이곳에 최초의 슈퍼마켓인 ‘킹 컬렌(King kullen)’이 등장합니다. 당시는 전세계적인 대공황 속에 24%에 달하는 살인적인 실업률로 모두가 고통받던 시기. 그런데도 아일랜드계 청년 마이클 컬렌(Michael kullen)은 많은 사람들의 우려 속에 다소 무모한 도전을 감행합니다. 네 맞습니다. 예상대로 ‘킹 컬렌’은 마이클 컬렌이라는 이 무모한(?) 청년의 작품입니다.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컬렌은 18세 때부터 상점 점원으로 일하면서 장사감각을 익혔습니다. 그는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능력도 탁월했습니다. 대공황과 대도시화, 자동차 대량 보급이라는 시대변화 속에 ‘많이 살수록 가격이 더 싸지는’ 대량구매를 유도한 컬렌의 아이디어는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자신을 ‘가격 파괴자(Price Wrecker)’라고 부르며 실현한 유통혁명은 곧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킹 컬렌’의 등장은 단순한 유통구조의 변화를 넘어 새로운 소비문화를 가져왔습니다. 대공황으로 전세계가 경영난에 시달리던 상황에서 어떻게 성공을 거두었을까요.
첫째는 넓은 매장. 다른 매장의 크기는 보통 250㎡ 수준이었지만 ‘킹 컬렌’은 2,000㎡나 되는 규모로 많은 물건을 진열할 수 있었습니다. 거대한 규모 때문에 사람들은 ‘킹 컬렌’을 슈퍼마켓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두번째 비결은, 대량구매와 대량판매. 컬렌은 대공황으로 쌓여가는 공장의 재고에 주목했습니다. 도산위기에 있던 도매업자로부터 대량으로 물건을 사들이면서 구매원가를 낮추었고 그 덕에 소비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식료품과 생필품 위주로 상품을 구성한 전략도 적중했습니다. 아무리 저렴하게 판매를 하더라도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던 소비자들은 쉽게 지갑을 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꼭 구매할 수밖에 없는 생필품 위주로 판매했기 때문에 ‘킹 컬렌’의 재고상태는 늘 양호하게 유지됐습니다.
그 결과 ‘킹 컬렌’은 6년 만에 연매출 600만 달러의 회사로 성장했고 그가 죽은 뒤에 사업을 이어받은 그의 부인은 더 많은 체인점을 늘려가며 사업을 확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는 ‘킹 컬렌’이 등장한 지 34년이 지나서야 슈퍼마켓이 등장했습니다. 1964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포리너슈퍼마켓이 있었지만 사실상 최초의 슈퍼마켓은 1968년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삼풍슈퍼마켓입니다.
그로부터 약 40년이 흐른 지금 슈퍼마켓은 더 이상 특이한 유통형태가 아닙니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에는 7만2,391개에 달하는 슈퍼마켓이 있습니다. 특히 1993년 이마트 창동점이 생긴 이후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은 가장 대표적인 유통형태로 자리잡았습니다. 대량 구매로 값을 낮추는 규모의 경제는 당장 소비자들에게 이롭다고 여기기 쉽지만 골목상권의 생존을 위협해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유통 모델의 등장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2015년 대한민국에서 킹 컬렌과 같은 작은 유통혁명이 다시 한번 재현되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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