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들은 기업을 무슨 봉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재정난에 시달리는 지자체로서는 기업을 통해 재정을 확충했으면 하는 마음이 앞서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겠으나 도가 지나쳐서는 곤란하다. 지난 7일 전주시에서 '현대자동차 전주연구소 남양 이전 계획을 철회하라'는 의회 성명까지 낸 일도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시 의회는 "현대차 전주공장은 지난 20년간 도민의 사랑을 받으며 자리매김했다"면서 "연구소를 이전하면 인구유출과 취업난 등으로 전북 경제가 냉각되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현대차를 압박했다. 현대차로서는 입지의 효율성 등을 따져 판단해야 할 자동차 연구기능의 이전 결정에 뜻밖의 부담이 생겼다.
분명한 사실은 현대차는 현대차의 것이지 결코 지자체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이렇듯 명백한 진실을 망각한 듯 행동하는 정치인이 있다. 전남 순천·곡성 지역구를 가진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은 '광주 자동차산업밸리 추진위원회' 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달 지역구 의정보고회에서는 "자동차 공장 유치를 위해 현대자동차 측과 접촉하고 있다"면서 "광주와 별개로 지역구인 곡성이나 전남 동부권에 20만~30만대 생산규모의 자동차 공장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아무리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이요, 현 정부의 핵심 실세라지만 언행이 금도를 넘어섰다. 정권의 실력자일수록 말과 행동을 삼가야 한다.
그러잖아도 현대차는 창사 이래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며 바짝 긴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4월 44.6%에 달했던 현대차의 내수 점유율은 올해 38.5%로 뚝 떨어져 생산 경쟁력 강화와 영업 혁신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해도 내수 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이런 판국에 지자체와 정치인들까지 부담을 떠안겨서야 되겠는가. 지자체가 진정으로 기업 유치를 바란다면 정치적 압박을 가할 것이 아니라 투자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기업 스스로 공장 건설을 원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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