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사진) 프린스턴대 교수가 현 시점에서 정부지출을 줄이면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AEA) 연례 총회의 '부양 또는 긴축, 리세션의 거시경제'라는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해 금융위기 이후 잠깐 재정지출을 늘렸던 세계 각국들이 2010년부터 긴축으로 돌아섰다며 민간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상태에서 정부지출마저 줄어들게 되면 경기침체(recession)가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세계에서 1만여명의 경제학자들과 학생들이 참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학회인 2013년 AEA 연례 총회는 이날 나흘간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폐막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대형 충격에서 벗어나려면 경기부양을 위한 정부의 재정개입이 불가피한데 2010년 그리스 위기는 재정지출을 감축해 적자를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각국 정부에 심어줬다고 설명했다. 이후 긴축이 유일한 방안으로 부상한 반면 긴축이 경기회복을 저해할 것이라는 일부 경제학자들의 경고가 무시된 결과 세계경제는 여전히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처럼 재정정책에 대한 거부감이 높은 것은 케인즈주의에 대한 혐오감이나 정치적 이유가 배경에 있을 수 있다며 경제적인 관점에서 재정정책을 비판적으로 보는 학자들은 ▦불황의 원인이 경제구조적이라는 시각 ▦통화정책 우선 ▦정부지출의 승수 효과가 작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의회예산국(CBO)의 분석에 따르면 아직 연간 9,000억달러 규모의 아웃풋 갭이 존재하고 경기부양을 위한 통화정책 역시 정치적 장애물을 피하기 어려우며 정부지출을 늘리면 가계소득이 늘어나 소비가 촉진된다는 점 등을 들어 반박하면서 재정정책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미 유럽 채무국들이 혹독한 긴축 결과 재정을 재건하지는 못한 채 대공황 수준의 침체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유럽의 지도자들은 여전히 더 큰 고통만이 해법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영국 역시 긴축으로 정책 방향을 틀면서 경제 회복의 기회를 잃었는데도 정책 실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도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 상향 논란에서 공화당이 재정지출 삭감을 요구하는 것은 미국 경제를 다시 침체로 되돌려놓고 말 것이라고 크루그먼 교수는 경고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1937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긴축을 하는 실수를 했지만 당시 긴축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 미만에 불과하다"며 "반면 지금의 그리스는 잠재 GDP의 16%에 달하는 긴축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경기부양은 무조건 좋은 것이고 긴축정책은 형편없는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지금의 정책을 지속하면 재앙이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토론에서는 재정지출 확대를 주장하는 크루그먼 교수에 맞서 해럴드 어링 시카고대 교수, 발레리 래미 캘리포니아 교수 등은 재정정책의 효용이 없다고 주장하며 뜨거운 논쟁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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