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토탈이 알뜰주유소 입찰에서 실패하면서 한화그룹의 정유업계 복귀가 수포로 돌아갈 상황에 놓였다. 지난 1999년 경인에너지를 매각하며 정유업에서 손을 뗐던 한화그룹은 지난해 삼성토탈을 인수한 후 16년 만에 정유업계에 다시 진출한다는 기대감이 큰 상태였다. 한화토탈이 4년 연속 알뜰주유소 공급자로 선정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한화는 그룹 전체 석유화학 사업과의 시너지 창출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석유공사는 14일 진행된 알뜰주유소 입찰에서 1부 시장 공급자로 현대오일뱅크(중부권)와 GS칼텍스(남부권)가, 2부 시장에서 현대오일뱅크(경유)가 공동 공급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한화토탈은 2부 시장의 휘발유 공급자로 입찰에 나섰지만 단독 입찰로 유찰되면서 다음 입찰을 노려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1, 2부 공급자로 선정된 3사는 오는 9월부터 2017년 8월 말까지 제품을 공급하게 됐다.
한화토탈이 원래 노리던 2부의 계약 물량은 휘발유 1억9,000만ℓ, 경유 1억3,000만ℓ을 기본으로 하되 필요할 경우 각각 9,500만ℓ씩을 추가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가격은 싱가포르 선물시장의 월평균 거래 가격에 ‘마이너스 알파(-α)’로 결정한다. 최대한 저렴하게 제품을 공급토록 한다는 취지다. 최저가낙찰로 진행되기 때문에, 현대오일뱅크는 경유 부문에서 한화토탈보다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해 승리를 거뒀다.
이에 따라 앞서 삼성토탈 시절 2년 연속 2부 시장 공급자로 선정됐던 한화토탈은 ‘한화’의 이름을 달자마자 고배를 마실 위기에 놓였다. 16년 만의 정유업 재진출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화는 지난 1970년 경인에너지를 설립한 후 정유 사업을 영위해왔지만, 1999년 이를 현대오일뱅크(당시 현대정유)에 매각한 바 있다.
다만 이 경우 알뜰주유소 사업과 관련해 계속 불거졌던 ‘특혜 논란’은 잠잠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유업계에서는 석유공사가 알뜰주유소 시장을 1, 2부로 나누고 2부에 세금 환급 등의 혜택을 제공해 결과적으로 한화토탈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며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한화토탈은 알뜰주유소 사업과 상관 없이 기존 사업 확장과 그룹 석유화학 사업과의 시너지 창출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한화종합화학, 한화토탈을 인수하면서 석유화학 사업부문의 규모를 크게 불렸다. 특히 한화토탈의 에틸렌 생산량(연간 109만톤)을 더하면 한화 석유화학 부문의 총 에틸렌 생산량은 291만톤으로 세계 9위 수준이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원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납사, 콘덴세이트, 액화천연가스(LPG)로 원료 다각화를 이뤘다는 점, 폴리프로필·파라자일렌·스티렌모노머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게 됐다는 점도 시너지 창출을 가능케 할 요인이다.
한화그룹은 이 같은 경쟁력을 기반으로 석유화학 사업이 글로벌 5위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올 초 신년사를 통해 “석유화학 부문은 선대 회장과 제가 모두 열정을 쏟았던 사업이고 그만큼 잘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자신감을 표명한 바 있다. 한화그룹은 기존 석유화학 부문의 경쟁력과 한화종합화학·한화토탈의 운영 노하우 등을 합쳐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화그룹 석유화학사업 부문의 총 매출 규모는 18조 원에 이른다.
한편 한화토탈은 주유소 시장에 직접 진출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국내 주유소는 약 1만2,000곳으로, 적정 수준인 7,000~8,000개보다 훨씬 많다. 숱한 주유소가 적자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주유소 사업에 뛰어들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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