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국이 세계 4위 반도체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를 인수해 메모리반도체 사업에 뛰어든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초비상이 걸렸다. 이번 인수건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중국이 메모리 사업을 시작한다는 징후는 점점 자주 나타나 메모리 분야 절대강자인 한국 기업들의 지위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이 커지고 있다.
14일 외신을 종합하면 중국 국영 반도체 회사인 칭화유니그룹(쯔광집단)이 미국 마이크론을 상대로 230억달러(약 26조2,000억원) 규모의 인수제안을 했다. 이번 인수합병(M&A)이 성사되면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마이크론은 최근 주력제품인 PC용 D램 가격 하락에 따른 사업부진을 겪고 있다. 쯔광은 지난 1998년 중국 명문 칭화대가 설립한 산학연 기업으로 2013년 중국 양대 모바일반도체 회사인 스펙트럼커뮤니케이션과 RDA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를 흡수하면서 중국 최대 반도체 기업으로 부상했다.
일단 관련업계는 쯔광의 마이크론 인수가 현실화하기는 쉽지 않다고 본다. 쯔광 측은 "아직 논의 중"이라고만 밝혔고 마이크론은 "인수제의를 받은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공식 제안이 나와도 중국으로의 기술유출에 민감한 미국 정부가 인수를 용인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과 관련해 투기자본의 무리한 개입과 경영권 위협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있는 만큼 미국에서도 핵심 산업 매각을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가 득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수 프리미엄이 마이크론의 최근 주가(17달러선)에 비할 때 19% 수준에 불과한 것도 현실화 가능성이 낮은 이유다.
하지만 이번 인수제의를 계기로 중국의 메모리반도체 진출 가능성이 점차 뚜렷해지면서 장기적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차지하고 있던 시장지배력이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현지 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주요 디스플레이 기업인 BOE도 올해 메모리 사업 진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박영주 현대증권 연구원은 "미국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가 중국 기업에 마이크론이 인수되는 것을 허용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중국의 반도체 사업 진출 가능성은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미 중국 정부는 메모리 진출 가능성을 공공연하게 열어두고 있다.
한해 메모리 수입 규모가 수 조원대에 이르는만큼 반드시 국산화를 이룬다는 방침이다.
앞서 리커창 총리는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신성장산업 육성을 지시하며 수십조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펀드 조성을 추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마카이 부총리가 총괄하는 거액의 반도체 산업 육성펀드도 조성해놓은 상태다. 중국 공업정보화부(MIT)는 지난 10월 반도체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1,200억위안(약 21조2,000억원)에 이르는 국부펀드를 마련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 역시 중국이 향후 5~10년 안에 최대 1조위안(약 176조7,200억 원)에 달하는 자금을 마련해 반도체 전문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국내 업계는 중국이 반도체 산업에 섣불리 진출하기 어렵고 설사 진출하더라도 한국 업체들을 따라잡으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 중국이 마이크론 같은 주요 기업을 인수해 자국산 브랜드로 키우는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중국의 모바일 기업들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로부터 공급받던 D램과 낸드플래시 물량을 대체하면서 급격한 실적악화가 우려된다. 특히 글로벌 수출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한국 업체들의 목줄을 죌 수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마이크론 대신 대만의 난야 같은 비교적 소규모 메모리 업체들을 사들이는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메모리 경쟁력은 수년간 투자로 다져진 효율적 생산관리와 반도체 성능을 판가름하는 미세공정 기술에서 나온다"며 "중국이 반도체 사업을 직접 시작할 확률은 거의 제로이며 부진에 시달리는 대만의 소규모 업체를 인수해 키우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제일 크다"고 했다.
다만 일부 업계 전문가들은 과감한 투자를 머뭇거리다 한국에 메모리 선두 지위를 내준 일본의 사례가 되풀이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학계의 한 전문가는 "국내 반도체 업계가 안이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조짐이 감지된다"면서 "정신 차리고 설비·기술 투자를 통한 경쟁력 향상에 몰두하지 않을 경우 막대한 자본을 갖춘 중국업체가 예상보다 빨리 한국을 제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