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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과학기술자상] 오병하 포항공대 교수
입력2001-11-19 00:00:00
수정
2001.11.19 00:00:00
헬리코박터 생존원리 세계 첫 규명
위(胃) 속은 상상을 초월하는 혹독한 세상이다.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염산 세례, 몸을 이루고 있는 단백질을 녹여버리는 소화액.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체는 아무도 없다. 순식간에 몸은 굳어버리고 흐물흐물 녹아 내린다. >>관련기사 "1등 빼앗기면 고생도 허사" 위 방어체계 무력화위해 자살
위 속으로 들어온 모든 세균은 죽어버린다. 하지만 예외란 있는 법. 극한의 환경에서도 살아남은 생명체가 있다.
동토의 땅, 남극의 수 천미터 얼음 속에도 생명이 있는 것처럼. 바로 '헬리코박터 파이로리'(Helicobacter pylori)다.
헬리코박터가 발견된 것은 70년대 말. 헬리코박터는 어떻게 위 속의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20년이 넘는 동안 밝혀낸 것은 그리 많지 않다.
헬리코박터가 사람 몸 속의 요소를 분해, 이산화탄소와 함께 부산물로 나오는 암모니아를 이용해 위산(염산)을 중화시키는 방법으로 살아간다고 추측했을 뿐.
추측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무리 실험을 해봐도 요소를 분해하는 효소(유리에이즈ㆍurease)가 페하(PH) 5정도의 산성에도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 속의 산도는 이보다 무려 100배나 강하다.
모든 과학자들은 머리를 쥐어짜봤지만 PH 5와 PH 3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헬리코박터의 생존은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빅 퍼즐'(Big Puzzle)로 남아 있었다.
이 수수께끼를 푼 사람이 바로 포항공대의 오병하 교수. 헬리코박터와 관련된 논문을 모두 읽어본 그는 유리에이즈의 3차원 모양에 관심이 갔다.
그는 헬리코박터 생존의 열쇠가 구조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구조를 알면 뭔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다소 막연한 짐작 뿐이었다.
그는 헬리코박터에서 유리에이즈를 만드는 유전자를 잘라내, 대장균에 넣었다. 대장균이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유리에이즈는 다시 결정으로 만들었다. 속을 들여다 보기 위해서다.
"바로 이거야!" 엑스선을 이용해 결정을 들여다본 오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유리에이즈 12개가 모여 만들어진 축구공 모양이 나타난 것. 12개의 유리에이즈는 오목-볼록한 부분의 아귀가 맞고 양-음 전하가 서로 잡아당겨 공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공 하나에 들어있는 원자 수는 무려 7만개.
모여 있으면 살아날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강한 위산과 접촉하는 부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는 흔히 무협영화에서 몇몇의 주인공이 수 십 명의 적과 싸울 때 서로 등을 대고 둥글게 서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축구 공처럼 모여있으면 위산과 접촉하는 면이 가장 적어지게 된다. 여기에 유리에이즈는 요소를 분해해서 만든 암모니아로 보호막을 형성, 위산을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다.
"유리에이즈는 또 꾀도 부리고 있어요." 오 교수는 유리에이즈는 요소를 분해하는 부분은 바깥쪽, 산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부분은 안쪽에 넣어 자신을 철저하게 보호한다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축구공 안쪽에 세포액을 품고 있으면 이중 삼중의 방어체계가 완성됩니다."
구조를 밝혀낸 뒤에는 실험으로 증명해야 한다. 오 교수는 다른 실험과는 달리 유리에이즈와 위산을 섞은 뒤 흔들어 대지 않았다.
유리에이즈가 모여 축구공을 만들게 하려면 가만히 둬야 하기 때문이다. 실험은 대성공. 유리에이즈는 PH3의 강산성에서도 살아 남았다.
"생화학자들은 실험을 할 때면 버릇처럼 기구를 흔들어요. 서로 골고루 섞이게 하기 위해서죠. 물론 저도 습관처럼 그렇게 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위 속은 실험실과는 달라요. 흔들 때 나타나는 소용돌이는 없거든요. 흔들어 대는 버릇이 유리에이즈를 죽게 한 겁니다."
생화학자들은 또 완충액을 쓰는 버릇이 있다. 변화를 천천히 관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위 속은 완충액 상태가 아니다. PH가 급격하게 변한다.
오 교수는 완충액을 쓰는 습관도 버렸다. 헬리코박터 '퍼즐 왕'이라는 영예는 결국 두 가지 버릇을 먼저 고친 오 교수의 차지가 됐다.
◇약력
▦61년 서울 생
▦85년 서울대 식품공학과 석사
▦89년~90년 미 위스콘신대 생화학과 박사ㆍ박사후 연수
▦90~91년 미 버클리 대 박사후 연수
▦93~94년 미 글락소 스미스클라인 선임연구원
▦94년~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조교수ㆍ부교수
▦2000년~ 포항광가속기연구소 겸임연구원
▦한국 생화학회 평의원, 분자세포생물학회ㆍ생물물리학회 정회원, 미 결정구조학 협회 회원, 미 생화학/분자생물학회 회원
▦김인순씨와 1남 1여
문병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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