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침체기에 빠졌던 기업인수목적회사(SPACㆍ스팩)시장이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 들어 스팩과 비상장 기업 간 합병이 조금씩 활기를 보이고 있고 '2호' 스팩을 상장하려는 증권사들의 움직임도 금융투자 업계 일각에서 속속 포착되고 있다.
2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현재 2호 스팩 상장을 검토 중인 곳은 우리투자증권과 이트레이드증권ㆍ키움증권 등 3곳으로 알려졌다. 우리투자증권의 경우 오는 하반기 내에 신규 스팩 1~2곳을 상장하는 방안을 현재 논의 중이다. 목표는 코스닥시장 입성으로 상장규모는 100억~200억원가량이다. 이트레이드증권과 키움증권도 비슷한 규모의 스팩을 상장하는 방안을 내부 검토 중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2010년 스팩제도 시행 당시 300억~800억원 규모의 스팩을 상장시킨 증권사들은 대부분 합병 실패, 상장폐지라는 쓰라린 기억을 가지고 있다"며 "그 영향으로 2호 스팩을 구상 중인 증권사들은 100억~200억원 규모의 소규모 스팩 상장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소규모 스팩 상장을 추진하는 이유는 앞서 경험한 시행착오와 관련이 깊다"며 "제도 시행 초기 유가증권시장을 목표로 하거나 수백억원 규모로 상장을 추진했다 제대로 대상회사도 찾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난 사례가 많아 2호 스팩 상장을 추진하는 대부분 증권사들이 전략 수정을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0년 제도 시행 이후 국내 증시에 상장된 스팩 22곳 가운데 10개사가 '합병예비심사청구서 미청구'를 사유로 결국 상장폐지됐다. 이 중 3곳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곳으로 공모규모가 350억~875억원에 달했다.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300억원 이상 규모의 스팩(5곳) 가운데 합병에 성공한 곳은 신한제1호스팩이 유일하다. 반면 200억원가량 규모로 상장한 스팩 17곳 가운데 8곳은 합병에 성공하거나 과정이 진행 중이다. 이들 중 상장폐지된 곳은 6개사로 현재 3개사는 청산기한을 앞두고 합병이냐 퇴출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전문가들은 '절반의 성공'에 머문 1호와 달리 2호 스팩이 흥행몰이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량 비상장 기업과 합병, 주가상승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성공 사례가 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잇단 퇴출로 '스팩은 수익성과는 먼 투자상품'이라는 인식이 각인됐다는 이유에서다. '대규모 투자자 유입→100% 공모→합병→주가상승'의 사례가 이어져야만 2호 스팩 시대가 흥행몰이라는 성공신화를 써내려 갈 수 있다는 얘기다.
한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최근 스팩시장의 분위기를 180% 바꾼 대표적 계기는 이트레이드1호스팩의 합병 성공과 하나그린스팩과 선데이토즈 간 합병 추진"이라며 "이트레이드1호스팩의 경우 유일무이하게 합병 후 주가 오르는 등 긍정적 결과를 가져왔고 또 '애니팡'으로 잘 알려진 비상장 회사가 하나그린스팩을 통해 상장을 추진한다는 점이 '스팩시장은 끝났다'는 투자자나 증권사들의 인식에 변화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처럼 성공적 사례가 이어질 경우 스팩시장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여기에 스팩 성공의 바로미터인 기업공개(IPO)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면 지금껏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던 스팩이 다시 백조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증권사의 한 고위관계자는 "똑같은 100억원 규모의 회사를 상장시켜도 스팩의 수익률이 2~3배 높다"며 "이처럼 수익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증권사들이 지금껏 2호 스팩 상장 추진을 미뤄온 이유 가운데 하나는 IPO시장 침체로 합병 대상기업을 물색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까닭에 기존 증권사들은 소규모 스팩으로 전략을 선회하고 있다"며 "IPO시장이 이르면 연말부터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점에서 스팩시장이 다시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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