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10월15일 오전10시, 이라크 바바 거거. 사막을 진동시키는 굉음이 울리더니 원유가 솟구쳤다. 시추 6개월 만에 지하 457m에서 터진 대박은 상상을 초월했다. 지역이 기름호수로 변하고 10㎞ 떨어진 키르쿠크까지 독성을 지닌 가스가 퍼졌다. 넘쳐 나는 석유를 막기 위해 제방까지 쌓았다. 분출은 8일째가 돼서야 가까스로 멈췄다. 이라크 유전이 처음 발견된 순간이다. 페르시아(이란)에 이어 중동지역에서 두번째로 터진 유전은 ‘바바 거거 1호 유전’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2,000년 전 저술된 ‘플루타르크 영웅전’에도 이 부근의 ‘불 뿜는 땅’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구약성서 다니엘서에서 바빌론의 느부갓세날 왕이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유대인 3명을 집어 던졌다는 ‘불타는 화구’가 바로 이 유전이라는 해석도 있다. 유전은 원주민인 쿠르드인이 아니라 국제 컨소시엄 소유로 돌아갔다. 영국계 2개 회사가 47.5%, 프랑스와 미국이 각각 23.75%, 아르메니아 출신의 개인사업자가 5%씩 지분을 나눴다. 영국이 최대 지분을 확보한 것은 1차 대전 말기 오스만튀르크의 영토였던 이라크에 병력을 대거 투입한 뒤 눌러 앉아 군정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전은 하이파항 등으로 송유관 건설이 완료된 1938년부터 영업에 들어갔으나 쿠르드인들의 생활은 오히려 나빠졌다. 영국이 내세운 허수아비 왕정과 쿠데타로 집권한 바스당, 사담 후세인 등 역대 이라크 통치세력에 철저하게 짓밟혔으니까. 원유 매장량 세계 3위, 중동에서 미개발 유전이 가장 많다는 이라크의 처지도 비슷하다. 두차례에 걸친 걸프전쟁으로 석유이권 대부분을 서방의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가져갔다. 오랜 세월을 뚫고 분출된 원유는 이라크인들에게 검은 황금일까 아니면 검은 재앙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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