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제조업하다 프랑스 출장
佛문화 매료돼 테마파크 구상
유럽 100번 오가며 33년 만에 문열어
전통가옥 싣고와 조립 '진짜' 재현도
이국적 풍경에 드라마 촬영지 인기
'별그대' 이후 해외 관광객도 줄이어
꼭 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 뽑혀
프랑스문화 이해 큰 도움 됐으면…
한홍섭(70·사진) 쁘띠프랑스 회장은 최근 겹경사를 맞았다. '한국 안의 작은 프랑스 문화마을'을 표방하는 테마파크 쁘띠프랑스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지난 2일 선정한 '한국관광 100선' 가운데 하나로 뽑힌 것이다. '한국관광 100선'은 한국인이 좋아하고 꼭 가봐야 할 국내 100개의 대표 관광지다. 지자체의 추천과 함께 3년간의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도출된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이것이 국내적인 측면이라면 해외에서도 빅히트를 쳤다. 한국방문위원회가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한 외국인 전용 온라인 할인쿠폰의 2014년 연간 다운로드 수를 분석한 결과 쿠폰제공업소 105곳 가운데 쁘띠프랑스가 1위를 차지했다. 이름난 면세점이나 대기업들을 앞선 것이다. 이러한 명성을 바탕으로 2014년에는 최고의 실적을 거뒀다. 연간 유료 입장객이 102만명으로 처음으로 100만명선을 넘었다. 전년에 비해서는 84% 증가한 수치다. 개장 이듬해인 2009년 입장객이 35만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5년 만에 세 배로 성장한 셈이다. 6일 경기도 가평 쁘띠프랑스에서 만난 한 회장은 이런 성적에 상관없이 하루 종일 분주했다. 봄축제 행사들을 앞두고 새 단장을 하는데 챙길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이 칠순이지만 직원들에게는 '촌장'으로 불리며 여전히 청춘인 듯했다. 쁘띠프랑스의 테마인 '어린왕자'가 장미와 여우를 길들이는 것처럼 한 회장도 쁘띠프랑스를 길들이고 있다고 한다. 한 회장은 "처음 시작할 때 정한 '정직'이라는 철칙을 항상 가슴에 담아두고 있다"며 "쁘띠프랑스를 국제적으로도 사랑 받는 한국의 관광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33년의 우직함이 쁘띠프랑스 만들어='인생 이모작'이라는 말이 있는데 한 회장이 그 전형이지 않을까 한다. 전반부는 페인트업계에서, 후반부는 테마파크 경영자로서다. 페인트 제조는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시작한 것이지만 테마파크는 전적으로 자신의 희망과 의지에 따른 것이다.
원래는 어느 정도 사는 집안이었지만 한 회장이 어릴 때 가세가 기울었다고 한다. 그러는 가운데 니스 제조일을 하는 외사촌이 "어머니 고생시키지 말고 기술 배워 장사나 하라"고 해서 따라가 일을 배웠다. 때문에 그의 정규학력은 중학교 2학년에서 그쳤다. 대신 19살에 서울 청계천상가에서 직원 하나를 두고 가게를 차렸다. 이 사업이 목재용 페인트 전문기업인 '신광페인트'로 성장한다. 연매출 100억원을 넘고 국내 주요 목재가공업체 10곳 중 9곳에 페인트를 납품했다.
외국과의 기술제휴 등을 이유로 유럽 출장이 잦았다. 한 회장은 "신문을 보다가 피카소의 딸이 소장했던 피카소 유작의 최초 전시회가 파리에서 열린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실제로 가 직접 보니 너무 좋았다. 그 다음부터 프랑스 출장에서는 꼭 미술관을 다니기 시작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번듯한 미술관 하나 차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생각을 점차 구체화하면서 깨달았다. 그는 "유명 테마파크에 사람이 몰리는데 그 옆 국보까지 있는 미술관은 한가하더라"고 했다. 방향을 바꾸었다. 한 회장은 프랑스의 생활문화를 알리는 방식으로 문학과 풍경을 선택했고 지금의 쁘띠프랑스를 만들었다.
한 회장이 프랑스 문화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은 게 1985년이고 지금의 가평군 부지를 매입한 것이 1998년이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8년 7월 쁘띠프랑스를 개관했으니 처음 구상할 때부터 33년이 걸린 셈이다. 그동안 유럽을 오간 게 100번이 넘는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비행기를 탄다고 한다. 그는 피와 땀으로 일궜던 신광페인트를 2007년 마지막으로 정리했다.
물론 테마파크 사업이 쉽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대부분이 말렸다. 안정적인 사업을 계속하지 왜 그러느냐고 했다. 다행히 쁘띠프랑스는 문을 열고 곧 자리를 잡았다"고 회상했다. 프랑스 문화에 대한 공부도 필요했다. 고려대 최고위경영자과정 등 대학원 최고위과정을 30여년간 10군데 이상 수료하면서 문화와 경영에 대한 안목을 쌓았다고 한다.
글자 그대로 '이국적'인 풍경은 방송과 신문들의 주목을 받았다. 한 회장은 "오픈 하고 얼마 안 있어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와 촬영 좀 하겠다고 해서 그럼 장소 대여비를 달라고 했다. '다른 데서는 오히려 돈도 대준다던데 좀 양해해달라'는 부탁에 '그럼 서로 주고받기 없기로 하자'며 장소를 빌려줬다"는 일화를 전했다. 그해 최고의 히트작이었던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였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한 회장은 쁘띠프랑스를 전국에 알릴 기회를 잡았다. 지난해 초 더 큰 사건이 터졌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촬영지로 소문이 나면서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이 쇄도한 것이다. 서울에서도 70㎞가 떨어져 있는(서울역 기준) 가평의 쁘띠프랑스를 방문한 외국인이 지난해 38만명이나 됐다.
◇느리게 봐야 하는 쁘띠프랑스=쁘띠프랑스를 방문할 때는 여느 테마파크처럼 해서는 안 된다. 넓은 다른 테마파크에서는 하나라도 더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서 바삐 돌아다녀야 하지만 '좁은' 쁘띠프랑스는 시간을 두고 음미해야 한다.
쁘띠프랑스는 아름답다. 한 회장의 페인트 회사 경력을 알고 나니 쁘띠프랑스의 색깔이 달리 보인다. 그래서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건물 한 채 한 채, 물건 하나하나에 한 회장의 손길이 배어 있다. 중앙광장 왼쪽에는 주택전시관이 있는데 이는 프랑스의 옛 전통가옥을 그대로 재현한 곳이다. 150년 된 진짜 가옥을 목재와 기와, 바닥까지 모두 해체해서 한국으로 싣고 와 그대로 조립했다.
쁘띠프랑스에 옮겨다 놓을 목조가옥을 찾기 위해 파리 북쪽의 노르망디까지 찾아갔을 때의 일이란다. "부동산업자와 함께 집을 보고 난 후 부동산중개소에 가서 '집을 구입해서 해체한 후 한국으로 가져가고 싶다'고 하니 안내했던 사람이 서류를 집어던지며 막 화를 냈다." 프랑스인다운 자기문화에 애착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다행히 다른 곳에서 적당한 가옥을 찾았다. 주택전시관에는 한 회장이 30여년을 프랑스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한 소품이 가득하다. 200년 된 가구와 장식물, 골동품, 그림, 액세서리가 방을 채우고 있다.
주택전시관 옆 갤러리에는 벼룩시장이 있다. 그는 프랑스를 방문할 때마다 파리 부근의 벼룩시장을 찾아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입해서 옮겨왔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호기심에 벼룩시장을 둘러보다가 문득 '한국에도 이런 벼룩시장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을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실행했다." 갤러리의 방 3개에 전시된 쁘띠프랑스 벼룩시장에는 프랑스 국조인 수탉 모형, 자기 인형, 기계식 시계, 자수제품, 램프, 쟁반, 동상, 은그릇, 유화제품 등 5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어린왕자'는 정식으로 라이선스를 체결해 들여왔다. 생텍쥐페리재단을 방문해 생텍쥐페리 외삼촌의 손자인 재단 대표와 계약을 맺었다. 그는 "이전에 나는 생텍쥐페리재단과 아무 인연이 없었다. 2000년 한 해 동안 네 차례 이 재단을 방문해 사업의 이유와 꿈을 설명해 동의를 받아냈다"고 말했다. 쁘띠프랑스 생텍쥐페리기념관에는 1943년 출간된 '어린왕자' 영어 초판본을 비롯해 프랑스어 출판본, 작품구상 당시에 생텍쥐페리가 직접 그린 그림, 자필원고 등이 전시돼 있다. 이외에 쁘띠프랑스 곳곳에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조형물이 자리잡고 있다. 어린왕자의 친구인 여우를 비롯해 술꾼·왕·마법사 등이 친근한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아이들이 프랑스에 대한 호기심을 갖기를"=한 회장의 생각은 분명하다. 프랑스 문화를 체험하고 싶은데 거리도 멀고 비행기 값도 비싼 프랑스로 직접 날아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쁘띠프랑스에서 작은 문화적 체험을 할 수 있게 한다면 어떨까. 한 회장이 이를 위해 밑바탕으로 삼은 것은 정성이다.
기존 국내에 산재한 외국풍의 테마파크가 '무늬만 외국'일 때 한 회장은 진짜 프랑스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직접 시골을 돌며 건물들을 살피고 가구·생활용품·인형들을 사들였다. 프랑스인들이 쁘띠프랑스를 찾아와서 오히려 자국에서는 보기 힘든 물건들을 발견하고 놀랄 때도 있다고 한다.
"글로벌 인재로 자라는 것은 다른 나라 문화를 더 잘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 아이들의 가슴속에 프랑스에 대한 작은 호기심의 불을 피워놓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게 그의 신조다. 그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꼭 한국적인 것들만 소개할 필요는 없다. 한국 안의 이국적인 풍경도 충분히 문화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쁘띠프랑스가 증명하고 있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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