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예방 안된다는 인식 버리고 범국가적 대책마련을"
 | 하규섭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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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상훈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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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봉은 상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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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하규섭 자살예방협회장
하상훈 생명의전화 원장
정봉은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총괄상무
국민생명 보호는 국가 책임… 연간 교육예산 10억 투입… 상담인 10만명 양성 필요
자살은 개인 아닌 사회문제… 총리실 산하 예방조직 구성… 부처 협력통해 효율 높여야
복지부·재단에만 한정 말고 자살예방 지원 주체 늘려 기업·민간서도 동참 유도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대 자살 국가라는 오명을 벌써 10년 가까이 이어가고 있는데 정부에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26일 서울경제신문 창간 51주년 특집 '생명을 살리자' 시리즈를 위해 열린 전문가 대담에서 하규섭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 정봉은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총괄상무 등 자살예방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정부의 미진한 자살예방 의지를 비판하며 보다 획기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3년 OECD 최대 자살 국가로 올라선 후 매년 자살자사망률이 상승하면서 '자살 공화국'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 회장은 "자살은 예방이 안 된다는 인식이 사회에 팽배해 있다"면서 "정부부처 내에서도 자살률을 낮추기는 어려우며 예산을 들여봐야 효과가 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 회장은 "국가의 기본의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냐"며 "한 해 1만5,000여명이 자살로 죽고 자살시도자 수는 20만명에 달하는데도 국가가 기본적인 책임을 수행하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하 원장은 "정부가 국민들의 자살을 개인적 문제로 생각한다"며 "자살을 사회 전반의 문제로 보지 않고 예방에 나서지 않는 것도 자살률 증가의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자살문제는 국가적 재난상태로 매일 초등학교 교실정원인 40여명이 자살로 죽어간다"며 "정부의 1~2차 자살예방 대책이 성과를 이뤄내지 못하고 자살사망률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가 자살문제를 너무 가볍게 여긴다는 것이다.
자살에 대한 정부 당국자들의 인식수준이 낮다 보니 자살예방 대책이 다른 정책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예산심의에서도 뒷전으로 밀리는 게 사실이다. 그나마 최근 수년간 연예인ㆍ정치인 등 유명인사들이 잇따라 자살한 후에야 자살을 막아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날 만큼 사회 전반에 자살에 대한 관심이 작다.
하 회장은 "사회가 자살에 대해서는 최고 자살률 국가라는 데 주목하고 걱정만 할 뿐"이라며 "행동과 실천으로 이어져 실제 예산확보와 같은 자살예방 활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 상무는 "자살예방은 보건복지부ㆍ전문가ㆍ교수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자살예방 사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보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며 자살예방에 대한 사회의 낮은 인식을 지적했다.
이들은 자살을 줄이기 위해 우선 현재 복지부와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등으로 한정된 자살예방 지원주체를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 회장은 "자살에 대해 단순히 나쁜 것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만 있다 보니 기업이나 민간단체들이 자살예방 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한다"며 이들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 상무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는 물론 기업이나 종교계에서도 자살예방에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으면 좋겠다"며 "정부가 많은 예산을 한꺼번에 바로 투입하기 어렵기 때문에서 민간의 노력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자살예방 사업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범정부적 자살예방 조직구성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장기적으로 자살예방에 대한 범국가적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법개정을 통해 자살예방 주관기관을 복지부에서 통합적 기능을 갖춘 총리실로 바꿔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히 원장은 "과거에 청소년 보호 관련 업무를 국무총리실에서 주관했을 때 큰 효과를 냈는데 이후 여성가족부 등 여러 부처들로 이관되면서 결국 흐지부지해진 선례가 있다"며 "자살예방을 조율할 헤드쿼터를 총리실 산하나 대통령 산하에 둬 각 부처 간 협력을 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 회장도 "자살문제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넘어 의료ㆍ종교ㆍ정신보건ㆍ문화적 차원 등 복합적인 예방활동이 필요하다"면서 "효율적인 자살예방 사업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사업을 중간에서 점검하며 관리하는 '코디네이터' 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개 자살미수자들은 6~7번에 걸쳐 자살을 재시도한다. 국내에서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은 50만명으로 추산되고 자살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200만명에 달한다.
하 회장은 "자살 가능성이 높은 200만명을 지역별 현장에서 찾아내는 10만명의 게이트키퍼(상담인)와 이를 전문적으로 관리할 1만명의 자살예방 전문가 양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정도 수준이면 현재 10만명당 30명을 넘어서는 자살사망률을 낮출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현재 국내에 게이트키퍼는 수천명, 자살예방 전문가는 수십명, 자살예방단체는 10여개 정도에 불과하다. 연간 10억여원의 자살예방 교육예산만 투입해도 수년 내 자살예방 전문가 1만명, 게이트키퍼 10만명을 확보할 수 있다"며 정부의 예산지원 확대를 촉구했다.
하 원장은 "전면전에 가까운 자살예방 작전이 필요하다"며 "자살예방 기관들이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작업을 진행하면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가능하다면 전국민이 자살예방 상담인 역할을 할 게이트키퍼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며 "생명존중 교육을 강화하고 각 직업별 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의료인, 교사, 군대 선임, 교도관, 자원봉사자 등이 게이트키퍼가 돼 촘촘하게 주변을 살피면서 자살 가능성이 있는 대상자를 찾게 되면 자연스레 자살예방 활동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이들은 기존 민간단체들도 더욱 분발해야 된다며 최근에 추진하고 있는 활동도 소개했다.
하 원장은 "성북구 자살예방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는데 지역 정신보건센터ㆍ사회복지관 등과 연계해 집중적이고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하다는 경험을 한 바 있다"며 "최근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300명의 자살예방 관계자들을 네트워크로 잇는 프로그램을 실시한 후 자발적인 지역별 연계모임이 생겨났다"고 전했다.
정 상무는 "재단이 자살예방 지원을 효과적으로 하자는 차원에서 게이트키퍼를 위한 교재개발과 표준화 지원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 회장도 "외국에서 가져오는 자살예방 프로그램은 한국적인 문화와 현실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재단과 함께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라며 "내년까지는 보급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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