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한 광고에 등장한 어르신이 디지털이란 생소한 단어를 듣고선 되물은 말이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3년, 이제 이 어르신도 디지털이란 말이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상파 아날로그 방송 종료로 디지털 방송이 일상화된 언어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민 대부분이 디지털 방송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지 여부는 의문이다. 국내 가구의 99% 이상이 디지털 방송 전환 채비를 완료했다는 발표가 이어지고 있지만 속살은 허울좋은 수사에 지나지 않은 탓이다.
우선 국내 케이블 유료 방송 가입자 1,500만명 중 1,000만명가량이 아날로그 방송 가입자다. 이들에게는 지상파에서 전송한 디지털 방송 신호가 아날로그 신호로 변조돼 송출되므로 디지털 방송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오히려 디지털 방송 화면 비율이 아날로그 화면과 달라 일그러진 화면이 노출돼 이전만 못한 품질의 방송을 보게 된다. 디지털 TV를 가진 아날로그 방송 가입자는 디지털 방송을 직접 수신 형태로 볼 수 있지만 외부입력 등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해 이용이 불편하다.
인터넷TV(IPTV)나 위성방송 가입자 및 지상파 직접 수신 가구 중 브라운관 TV를 가진 가구 또한 아날로그 방송으로 변조된 디지털 방송을 볼 수밖에 없다. 이들 서비스를 브라운관 TV로 이용하는 가구는 최소 100만 이상으로 추산되며 결국 국내 가구의 절반가량은 디지털 방송의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디지털 방송 전환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가 1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는 등 장밋빛 전망만 내놓고 있다. 디지털로 위장한 '돼지털 방송'을 보고 있을 가구를 지원키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
무엇보다 빈부격차가 정보격차로 이어진다는 '디지털 디바이드'가 화두인 요즘이다. 전 국민이 보편 타당하게 시청할 권리가 있는 지상파 방송에서만큼은 동등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정보격차 해소의 첫걸음이 아니겠는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