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獨정부 표심 잃을수 있었지만 수많은 정치적 타협 이끌어내
근로자는 해고안되는 선에서 임금·근로시간 축소 감내해야
고령화 비용 청년에 전가 안돼… 노령인구 경제활동 가능하게
빅데이터 등 활용한 개혁 필요
독일의 노동시장 개혁인 '하르츠 개혁'을 이끈 페터 하르츠(74·사진) 전 독일 노동개혁위원장이 정치적 리더십, 재정적 뒷받침, 아이디어(근로자의 한계 정의) 등 세 가지를 성공 비결로 꼽았다. 그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한계와 근로자의 한계를 감내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적인 한계란 표심에 흔들리지 않는 추진력, 근로자의 한계란 해고되지 않는 선에서 임금 혹은 근로시간을 줄이는 양보를 뜻한다. 하르츠 전 위원장은 21일 세계경제연구원과 한국무역협회 주최로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독일 하르츠 노동개혁과 한국에 대한 시사점' 특별 조찬강연에서 "당시 슈뢰더 정부가 감당한 한계는 용기가 필요했던 것으로 개혁을 추진하면 유권자를 잃을 가능성도 있었다"며 "수많은 정치적 타협을 통해 개혁을 실행해냈고 국내보다는 국제적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더불어 하르츠 전 위원장은 "사람이 견딜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새로 정의하고 엄격히 만드는 게 당시 위원회의 아이디어였다"면서 노동개혁의 우선조건으로 개혁 대상(근로자)이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선이 어디까지인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위원회에서 지역적·물질적·기능적·사회복지상의 한계를 기준으로 삼았다"며 "연방노동청은 이를 실천에 옮겼고 실업자가 정부로부터 중개된 일자리를 거부할 경우 사유를 제출하도록 규정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실업자도 권리와 의무를 확실히 갖도록 한 것이 성공의 한 배경이었다는 설명이다.
폭스바겐 인사담당 이사를 지냈던 그는 감당 가능한 한계를 경험에 비춰 설명했다. 하르츠 전 위원장은 "1990년대 초반 필요보다 근로자가 3만명이 많아 해고해야 했는데 직원들에게 근무시간을 주 4일로 줄이고 급여를 그만큼 줄이자고 했더니 대부분이 해고 가능성보다는 그것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것이 그들에게 감당 가능한 선이었던 셈이다.
사회적 대화에 있어 성공을 위한 열쇠는 무엇일까. 하르츠 전 위원장은 "해고요건을 완화한다거나 단기직을 강화하는 등 지나치게 노조를 자극할 주제를 가져가서는 안 된다"며 노동조합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일자리 보호라는 점을 강조했다. 해고요건 완화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요건 완화라는 두 가지 핵심의제로 결국 결렬됐던 우리의 노사정 대타협 논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르츠 전 위원장은 2003년 독일 사민당 총재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시행한 사회복지와 노동정책인 '어젠다 2010'에서 노동시장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 개혁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하르츠 개혁'은 단기직과 시간제 근무를 도입하고 실업수당 수혜 자격을 강화하는 등 고용시장을 유연화하는 것이 골자였다. 이 정책은 실업률이 10%에 육박하고 경제성장률은 0%대에 머물던 독일 경제가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겪는 고민거리인 고령화와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해법도 제시했다. 하르츠 전 위원장은 "고령화 비용을 젊은이들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면서 "기대수명이 올라간 만큼 새로운 개혁을 통해 노령인구의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그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기존 일자리 외에 다른 일자리를 찾고 고령자와 청년 사이에 갈등구조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덧붙였다.
빅데이터를 통해 실업 문제와 장년층 일자리 문제를 풀어낸다는 그의 지적은 곧 생애 근로기간을 연장해줘 미래세대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 정부에서 추진하다 좌초된 노동시장·공적연금 개혁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