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을 겪고 있는 국내 조선업계가 통상임금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이번 판결로 현대중공업 3,000억원을 비롯해 조선업계는 5,000억원 이상의 추가 비용 부담을 안게 됐다.
울산지법 제4민사부(이승엽 부장판사)는 12일 현대중공업 근로자 10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날 현대미포조선 근로자 5명도 같은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설과 추석 상여금 100%를 포함한 800% 모두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인 '상여금이 정기성(정기적인 지급)과 일률성(모든 근로자에게 지급), 고정성(근로자가 제공한 근로에 대해 추가적인 조건과 관계없이 당연히 지급될 것이 확정돼 있음)을 갖춘 경우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내용을 인용했다.
법원은 다만 3년치 임금 소급 지급과 관련해서는 단체협상에 근거해 계산해달라는 근로자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근로기준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면 근로자들은 전체의 절반 수준인 1인당 1,500만원 정도를 소급분으로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조선업계의 통상임금과 관련해 사실상 근로자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리자 노사는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노조는 "노사 간에 합의한 명목상 통상임금이 인정 안 된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만 어느 정도 예상된 판결이어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지난 2012년 12월28일 10명의 근로자가 제기한 이번 소송에 노사는 합의를 통해 대표 소송으로 인정한 바 있다. 노조는 이를 근거로 회사 측과 협상을 진행한다는 방침도 함께 밝혔다.
반면 회사 측은 "재판부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법정수당만 인정하고 약정수당과 근로기준법을 초과해서 지급하는 금액을 공제해준 것은 다행이지만 설·추석 등 상여금의 고정성과 관련해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며 "특히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제시한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라는 신의칙 기준이 적용되지 않은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판결문이 오면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의 통상임금 1심 판결은 근무여건과 상여금 지급 기준이 비슷한 조선업계 전체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임단협에서 통상임금에 대해 동종업계 판결을 기준으로 다시 협상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삼성중공업도 지난달 말 임단협을 마무리하면서 통상임금 논의를 올해 1·4분기까지 이어가기로 해 현대중공업의 이번 판결 결과가 중요 변수가 됐다.
특히 법원이 현대중공업 근로자가 제기한 3년치 임금 소급 적용도 일부 인정한 것에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대중공업은 애초 2009년부터 4년 6개월치로 6,300억원가량의 추가 비용이 들 것으로 계산했지만 법원이 소급 적용 방식을 달리해 50% 수준인 3,000억원가량의 추가 비용이 들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지난해 3조2,495억원의 적자로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간 현대중공업으로서는 이번 판결에 따른 추가 비용으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각각 1,000억원이 넘는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이달 11일 울산 본사에서 열린 제73차 임단협 교섭에서 새로운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 많게는 10만원이 넘는 기본급 인상을 약속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불황 속에 임금인상과 통상임금 추가 지급이라는 악재까지 만나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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