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들이 찍은 한 컷의 사진에 비친 청와대 국무회의 풍경이 묘하다. 대통령이 발언하는데 장관과 청와대 참모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메모를 하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적고 있는 것이다.
통수권자의 발언을 메모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있지만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너무 세세한 것을 챙기다 보니 국무위원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받아 적는 데 급급해 한다"는 지적을 제기한다. 그 뒤 등장한 게 만기친람(萬機親覽) 논쟁이다. 온갖 정사(政事)를 대통령이 직접 관여한다는 뜻인데 결국 집권 초기에 외쳤던 책임총리제나 책임장관제를 통한 권한 분산은 조용히 자취를 감췄다. 장관 등이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면서 대통령이 모든 업무의 매뉴얼이 되는 양상이 굳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는 과정에서 우왕좌왕했던 난맥상도 결국 이 같은 정부의 모습과 무관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정부의 임용과 인사개혁은 물론 행정부 내에서의 권한 분산, 행정부에 대한 견제시스템 구축이 이뤄지지 않는 한 제2의 세월호 사태는 재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권한을 분산하되 행정부에 대한 이중삼중의 견제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①정부의 권한분산…내각에 권한과 책임을 줘 대통령이 곧 매뉴얼 되는 구조 바꿔야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 대해 "주변 정치인이 자신의 이름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것을 가장 경계했기 때문에 책임과 권한을 갖고 통솔하는 2인자를 만들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집권 초기 책임총리제·책임장관제를 통한 권한 위임을 공언했지만 실행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그는 "총리나 장관에게 권한을 주지 않고 본인이 모든 것을 다 챙기려는 리더십을 바꾸지 않는다면 국가를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통치 스타일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조순형 전 의원은 "대통령은 큰 그림에서 정부를 운영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도 책임총리제·책임장관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사와 예산권을 분산해야 주체적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위기 때 신속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정책을 두고 벌어지는 부처 간 이기주의적인 대립은 문제지만 '견제의 장치'마저 허무는 것 역시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 부처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대통령이 명을 하면 반대하는 의견을 갖고 있는 부처는 입을 닫아버린다"면서 "그런 것이 누적되면서 큰 사태로 이어지곤 했다"고 말했다.
②감사원장·권익위원장 등 임기확대…정권 입맛에 따라 휘둘리는 것 차단해야
관료를 견제하고 국민 권익을 대변할 기관장의 임기가 짧은 것도 개선할 과제로 꼽혔다. 대표적인 것이 감사원과 국민권익위원회 등이다. 감사원장은 임기가 4년이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임기를 채우지 못한 사례가 빈번했다. 자연스럽게 일부 감사의 경우 정권 입맛에 맞춰 결과가 바뀌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감사원은 (정권의) 눈치를 봐서는 안 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면서 "한국은행 총재처럼 정권 임기와 상관없이 임기가 보장돼야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기가 더 연장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과 독일의 감사원장 임기는 15년이다. 김윤권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도 "독립성과 자율성을 부여하되 책임까지 함께 지워야 감사원이 바로 설 수 있다"고 조언했다.
③정당의 정책전문성 높여 행정부 견제…목소리만 큰 입법부 아닌 논리·정책으로 행정부 견제해야
입법부의 주요 기능은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통제다. '입법' 권한과 '감사권'을 쥐고 있는 국회는 확실히 과거보다 행정부에 비해 힘이 커졌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법을 통과시킬 때나 국정감사 국면에서는 입법부가 행정부보다 우위에 있을 뿐 각론에 들어가면 약하다. 더욱이 일부 의원입법은 관제법이다. 정부가 만들어놓은 법안을 의원입법의 형식으로 통과시키는 경우도 많다. 정부 관료들이 뒤에서 국회를 비웃는 것도 이런 풍토 탓이다. 전문성은 결여돼 있는데 목소리만 크다는 얘기다. 김 연구위원은 "국회의원은 재선에 목말라 있다 보니 정책보다는 정무에 더 관심이 많고 전문성도 부족하다"면서 "결국 입법관료의 전문성을 키워 시스템적으로 보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책보좌관제도를 더 활성화하고 각 당에 정책전문가를 포진시켜 정부와 맞설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④관료에 대한 국민소환 도입…국민과 관료의 갑을 관계 바꾸도록 해야
근대화 이전부터 관료는 국민에게는 갑(甲)이었다. 그런 행태는 현재까지도 이어진다. 예산과 공권력·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관료사회는 '공복'이 아닌 주인이었다. 마땅한 견제장치가 없는 탓인데 이참에 고위관료에 대한 국민소환이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치와 정부 내부기구가 감시와 통제를 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 드러난 만큼 국민이 직접 개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는 "세월호 참사 때도 생사여탈권을 쥔 대통령이 진도를 방문한 다음 관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면서 "국민이 직접 관료를 견제할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다만 "관료에 대한 국민소환 장치가 필요한데 남발될 경우 복지부동이 더 심해질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특별취재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