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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잠실의 롯데월드몰 엔터테인먼트동 5층. 영화관 입구에 걸린 대형 스크린에서 개봉을 앞둔 신작 영화의 화려한 예고편 영상이 흘러나온다. 2분 남짓 지났을까. 번쩍이던 예고편이 사라지더니 '서울시 정밀 진단 요청에 따라 임시 휴관 중'이라는 내용의 안내문이 커다란 화면을 가득 메운다. 스크린 바로 아래 위치한 영화관 입구에는 유니폼을 입은 젊은 직원이 홀로 서 있다. 차단선을 설치해 놓긴 했지만 혹시라도 입장하려는 고객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직원 뒤로 보이는 영화관 내부는 썰렁하다. 팝콘 기계도, 음료수 판매대도 비어 있다. 간간이 안전모에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만이 영화관 내부를 오갈 뿐이다.
영화관 위층에 위치한 음식점 창가에는 가림막이 쳐져 있다. 음식점은 얼마 전 폐업했다. 영화관이 영업을 중단하면서 음식점을 찾는 손님의 발길도 뚝 끊겼기 때문이다. 음식점은 쇼핑몰 내에서도 가장 목 좋은 곳인 영화관 인근에 자리잡아 기대감이 높았다. 매장 인테리어 공사에도 큰 돈을 들였지만 적자를 보면서 계속 장사를 할 순 없었다. 영화관 앞 에스컬레이터도 마찬가지. 국내에서 보기 드문 대형 에스컬레이터지만 이용하는 손님이 거의 없다. 텅 빈 채 회전을 반복한다. 에스컬레이터 주변 음료 매장과 의류 매장 점원들은 에스컬레이터를 바라보며 오지 않는 손님을 마냥 기다린다.
오는 14일이면 개장 6개월을 맞는 롯데월드몰이 누더기 영업 상황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면서 입점 업체들의 고통이 날로 커지고 있다. 유통업계 통상적인 기준에 따르면 오픈 후 반년 정도가 지나면 영업이 안정화되는 단계에 접어들지만 롯데월드몰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유료 주차, 그것도 사전예약제에 영화관과 아쿠아리움이 잇따라 영업을 중단하면서 오히려 개장 초기보다 방문객이 크게 줄어들었다.
롯데물산에 따르면 지난 해 10월 오픈 직후에는 한동안 하루 평균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새로 문을 연 초대형 복합몰을 구경하러 왔다. 하루 평균 1만5,000명이 영화를 관람했고 아쿠아리움엔 5,000명이 입장했다. 하지만 영화 관람객과 아쿠아리움 입장객은 현재 '제로'. 롯데월드몰 전체 일일 방문객 수는 5만명 선으로 개장 초기의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이에 따라 영화 관람 등의 여가 활동 후 추가적인 쇼핑에 나서는 방문객 수요를 예상하고 입점했던 패션, 식음료, 잡화 관련 입점 업체들이 기대 이하의 매출에 줄줄이 한숨만 쉬고 있는 실정이다.
롯데월드몰 관계자는 "입점업체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5개월간 임대료 등 수수료를 감면해주고 롯데월드 공연단 초청, 핀란드 캐릭터 무민 행사 등 볼거리도 마련했지만 좀처럼 방문객이 늘지 않는다"며 "비상식적인 괴담마저 돌면서 입점 업체들은 한숨을 넘어 분노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롯데월드몰과 연결된 애비뉴엘월드타워점의 입점업체들도 속끓이기는 마찬가지. 결국 애비뉴엘월드타워점도 파트너사에 대한 한시적 수수료 인하를 결정했다.
입점 상인들은 롯데물산 측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지난 달 말 롯데월드몰에 영업 중단 조치를 내린 서울시에 탄원서까지 제출했다. 상인들은 탄원서에서 "지난 해 임시 개장 시기가 한두 달 미뤄지면서 큰 손실을 입었고 채용한 직원들도 떠나보냈다"며 "지난 해 12월 영화관과 수족관의 영업이 중단됐고 가뜩이나 적은 매출은 또 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하소연했다.
상인들의 지적대로 영화관과 수족관 영업 중단은 입점 업체들의 영업에 직격탄을 날렸다. 엔터테인먼트동 상부에 자리한 영화관은 복합몰 영업에 있어 '샤워 효과'의 핵심 테넌트다. 방문객들이 5~11층에 걸쳐 자리 잡은 롯데시네마에서 영화를 보고 난 후 영화관 주변 식음료 매장으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거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패션 의류·아웃도어·라이프스타일·키즈 매장 등을 들르는 쇼핑 동선을 고려해 복합몰이 설계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관이 영업을 중단하면서 영화관 주변 매장에도 손님이 뚝 끊겼다.
영화관 영업 중단으로 '샤워 효과'가 사라졌다면 지하 1층의 아쿠아리움의 영업 중단은 '분수 효과'를 거둬들였다. 가족 단위 고객들의 방문을 유도하기 위해 25m 규모의 국내 최대 메인 수조창과 국내 최장 수중 터널까지 설치했지만 아쿠아리움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아쿠아리움 앞 한류 테마 푸드코트는 당연히 빈 자리가 넘친다. 아쿠아리움 관람 후 아이들이 흔히 사달라고 조르는 디저트 매장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아이를 둔 사람들의 주된 롯데월드몰 방문 '목적' 하나가 사라지면서 키즈 관련 매장을 찾는 사람도 급감했다. 동물원 테마 매장, 블럭 매장, 캐릭터 숍 등이 매출 부진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탄원서 제출 당시 대표로 나선 최승윤 오가다 제2롯데월드점 대표는 "현재 상황이 지속되면 부도가 날 수 밖에 없다"며 "수족관과 영화관을 조속히 개장해주고 주차 규제도 해제해 그저 남들과 같은 조건으로 영업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주요 테넌트의 영업 중단과 입점 업체의 매출 부진은 종사 근로자들의 이탈로 이어지고 있다. 롯데물산 관계자는 "롯데월드몰 내 영화관과 수족관, 입점 업체 근무 인원이 개장 초기보다 1,000명 이상 줄어들었다"며 "이에 더해 공연장 공사 중단으로 생계형 근로자들의 일자리도 사라져버렸다"고 말했다.
롯데월드몰 영업 부진과 방문객 감소가 계속되면서 서울을 대표하는 관광 상품으로서의 가치도 떨어지고 있다. 실제로 쇼핑을 위해 잠실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은 쇼핑몰을 둘러보기보다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면세점으로 직행한다. 중국 웨이보에서는 롯데월드몰에 방문했다가 실망했다는 후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카이얼리87'이라는 ID를 사용하는 중국인 네티즌은 "수족관이 볼 만하다고 하는 친구들의 글을 보고 롯데월드몰을 찾았지만 허탕만 치고 왔다. 아쉽다"는 글을 남겼다. 또 '메이리한스'라는 ID의 중국인은 "제2롯데월드의 외관은 정말 훌륭했지만 오늘 가 보니 실속은 '꽝'이었다"며 "수족관은 여전히 문을 닫았고 언제 열겠다는 안내문도 붙어 있지 않았다. 허한 마음에 호수만 구경했다"고 후기를 남겼다.롯데물산 관계자는 "단순한 하자 보수적 상황들이 건물 구조의 문제로 번지는 것은 억울한 부분으로 실제로 롯데월드몰에 와보면 주변에 많은 안전망과 2중, 3중의 보호 장치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며 "롯데월드몰은 모든 보완 조치를 마치고 서울시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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