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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15> 낯설게 하기

남보다 더 높이 더 멀리 뛰기 위해 필요한 건 ‘낯선 것’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입니다. 그 자체로 온전히 품을 수 있는 사람만이 유연하고 다양한 사고가 가능한 법이니까요.

익숙함은 편안함과 친밀감입니다. 기존에 자신의 기억 속에 보존돼 있는 어떤 구조와 삶의 장면이 만났을 때 느끼는 만족감과 자연스러움입니다. 아무리 출세 지향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이 50을 넘으면 새로운 관계를 잘 맺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보는 데 들어가는 시간, 비용과 노력, 그리고 그를 믿고 무엇인가를 맡겨야 한다는 부담감 등이 관계 확장을 어렵게 하는 원인입니다. 그럴 때 사람은 과거의 인연을 찾습니다. 친구, 동창, 혈족을 통해 불확실성을 줄이고 네트워크에 기대 상대방의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차단합니다. 그가 벌일 수 있는 의외의 행동까지도 통제권 안에 넣고 싶은 것입니다.

익숙함을 전체 커뮤니티의 동질성, 더 나아가 응집력으로 변질하게 만든 집단이 여럿 있습니다. 법조계, 군경, 의료업계 등 숱한 전문가 집단이 그러합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이런 기술적 전문성보다 주관성과 표현력이 더 중시되는 예술가 집단입니다. 19세기 파리와 20세기 뉴욕은 이민자와 다양한 범주의 예술가들이 영역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교류하던 네트워크였습니다. 반면 21세기 서울의 문화계 네트워크는 특정 음악대학과 미술대학, 그리고 학맥과 지연으로 똘똘 뭉친 동질성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학한 지역과 학교만 다를 뿐이지 예술적 성향이나 한국에서의 출신 학부 등은 그들을 같은 류의 집단에 분류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이렇게 강하게 연대하고 있는 집단의 힘은 그 안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을 철저히 배척하고, 집단 안에서도 나이 순서, 권력 순서대로 사람을 줄 세우는 근본적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합니다.

“걔 정말 잘해. 음악적으로 너무 훌륭하지 않니.” 이런 주관적인 평가 한 마디를 선생님으로부터 듣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과 비용은 엄청납니다. 여기에는 다양한 경제적 노력 말고도 사회심리적인 구조의 힘이 있어야만 가능한 ‘평판의 정치학’이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평가하고 검증하고자 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기와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기준이 등장할 때에는 ‘이상하다’ ‘독특하다’ ‘납득하기 어렵다’는 보수주의가 발동합니다. ‘잘하긴 하지만 자연스럽지는 않다’, ‘똑똑하긴 한데 사회성이 결여돼 있다’는 말 속에 ‘나에게 배워라’라는 심리가 숨어 있습니다. 정말로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발밑에 복속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싶은 겁니다. 참으로 불순하기 그지없습니다.

수많은 한국인 솔로이스트들이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합니다. 이들이 국내 음악계에 들어와서 주요 네트워크의 한 구성원으로 존중받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안타깝지만 극히 낮은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낯선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 익숙하게 만들려는 노력보다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낯선 건 위험해 보이지만 특별하기도 하니까요.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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