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4년8월1일 이탈리아 피렌체. 한 인물의 죽음에 거리의 걸인들까지 눈물을 훔쳤습니다. 551년전 오늘은 ‘르네상스의 주역’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가 숨을 거둔 날입니다. 이날 75세의 일기로 사망한 코시모는 훗날 피렌체 시민들로부터 국부(國父)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시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은 인물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오늘날까지도 사회환원의 대표적인 모델로 꼽히는 메디치 가문. 그 뿌리에는 코시모가 있습니다. 1389년 창업자 조반니 메디치의 장남으로 태어난 코시모는 메디치 가문의 가업인 은행업으로 평범한 중산층 집안이었던 메디치가를 피렌체 최고의 부자이자 명문가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번 돈을 종교행사나 건축·조각 등에 아낌 없이 투자했습니다. 물론 그가 자선과 기부에 적극 나선 배경은 ‘고리대금업자’라는 비난을 희석시키자는 차원이었지만 메디치 가문의 명망을 드높이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특히 그의 기부는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냈고 코시모는 피렌체 최고의 권력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학업을 마친 코시모가 메디치은행 로마지점에서 근무하며 교황청의 운영방식을 익혔고 훗날 피렌체를 지배하는데 톡톡히 써먹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죠! =))
특히 코시모의 예술 사랑은 유명합니다. 아름다운 성당을 건축해야만 고리대금업을 한 죄를 씻을 수 있다는 믿음에 산 로렌초 성당 건립 비용을 대기도 했죠. 당시 부자들은 코시모를 따라 건축과 조각·미술품에 투자했고 이 같은 투자 열풍 속에 르네상스의 꽃도 활짝 필 수 있었습니다. ‘로마제국흥망사’를 쓴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이 ‘코시모라는 이름은 르네상스의 동의어나 다름없다’고 말한 것을 보면 그가 예술사에 세운 업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나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다 되돌려드리겠습니다.’ 코시모가 평생 신조로 삼았던 말이라고 합니다.
물론 의도가 분명한 사회공헌이었지만 그의 신조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귀감이 됩니다.
/서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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