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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육로관광기]비무장지대 지나며 `가슴 뭉클`
입력2003-02-16 00:00:00
수정
2003.02.16 00:00:00
14일 오후 12시 50분. 숨이 멎었다. 버스는 임시 남북출입관리연락사무소(CIQ)에서 벌어진 길놀이패의 환송을 뒤로 한 채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땅으로 막 들어서고 있었다.
비무장지대(DMZ)을 통과해 북한에 들어간다는 흥분감은 이내 긴장감으로 바뀌었다. 도로 주변에 늘어선 `위험 지뢰지대`라는 경고문은 가슴을 더욱 졸이게 만들었다.
“덜커덩…”
오후 1시 5분. 마침내 남방한계선의 통로인 금강동문이 열리는 순간 멎었던 숨은 쿵쾅거리는 심장박동으로 바뀌었다. 비포장 임시도로 주위로 입춘을 넘긴 햇살이 쌓인 눈을 녹이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사분계선(MDL)이 나타났다. 우리 일행보다 더 긴장한 듯한 북한군인의 눈빛이 들어왔다. `아, 북녘땅이구나.`
분단 50년. 얼마나 긴 세월이었던가. 이리도 가까이에 북녘땅이 있었던 것을, 이리도 쉽게 땅길이 열리는 것을…
임시도로 바로 옆으로 동해선 본 도로를 복원하기 위한 지반공사가 그럴듯한 도로 모양새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북쪽으로 금강산 끝자락인 적벽산의 기묘한 바윗돌들이 가슴속으로 굴러들어오는 듯 했다.
“안녕하십니까”
북방한계선을 넘어선 버스위로 자동소총을 든 북한 군인들이 올라서자 승객 한명이 말을 건넸다. 북한 군인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짧게 대답하고선 금방 차에서 내렸다.
버스는 다시 움직였다. 부산아시안게임 때 인기를 모았던 `청년 여성 취악단`이 `반갑습니다``아리랑`등을 연주하며 환한 표정으로 관광객을 맞았다. 그제서야 긴장감이 다소 누그러졌다.
7번 국도로 불리는 비포장 도로를 달린 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북측 고성군 마을로 들어섰다. 가끔씩 화물열차가 지난다는 역사와 토담집들. 소달구지를 몰고가는 모습은 60~70년대 우리의 시골모습 그대로였다. 마치 옛 풍경이 기록된 흑백사진이 파노라마처럼 연결되고 있는 듯 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이었던 1시간 반 남짓. 감격과 설레임으로 달려온 일행은 바닷길 관광으로 익숙해진 온정리 마을에 다다른 뒤에야 갈증난 목을 축였다. 뱃길이 열리고, 이제 땅길도 열렸다. 조금씩 우리 곁에 다가서는 봄처럼 통일도 그렇게 가까워지고 있으려나.
<금강산=조영주기자 yjch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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