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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로 국내 증시가 급락하자 기관투자가들이 결국 손절매에 나섰다. 지난달까지 외국인의 매도물량을 받아내며 버팀목 역할을 하던 기관이 계속된 악재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매도 행렬에 가세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기관의 손절 물량이 더 나올 수도 있지만 대외환경이 어느 정도 완화되면 가매수로 방향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51.39포인트(2.80%) 하락한 1,783.12포인트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18일 1,782.46포인트를 기록한 후 올 들어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 이날 외국인과 개인은 각각 2,640억원, 1,458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지수하락을 이끌었다.
주목할 점은 그동안 매수 기조를 끌고 왔던 기관의 매물이 이날 상대적으로 컸다는 점이다. 기관은 이날 한때 1,200억원어치 이상을 팔아 치우는 등 매도세로 일관하다가 결국 923억원 순매도로 장을 마감했다. 이날 기관의 순매도 규모는 지난 4월20일(-1,329억원) 이후 두 달여 만에 가장 큰 금액이다. 특히 투신의 경우 펀드에 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430억원어치를 내다 팔며 지수하락을 부추겼다.
전문가들은 기관들이 글로벌 경제악화 우려로 부분적인 손절매에 돌입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스ㆍ스페인의 유로존 탈퇴 우려가 여전한 데 이어 미국의 고용지표까지 악화되면서 투자심리를 급랭시켰다는 분석이다.
김학균 대우증권 연구원은 “현재 주가가 연중 최저 수준이니 기관에서 어떤 가격대에 샀던지 수익을 내고 팔기는 어려운 시점으로 보인다”며 “유럽 위기감이 여전한 데 미국과 중국의 경기우려도 제기되며 기관이 손절매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곽중보 삼성증권 연구원 역시 “글로벌 경기 불안으로 투신권을 중심으로 이날 매도세가 강했다”며 “현재 코스피 수준이 주가수익비율(PER) 8배,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수준인 만큼 수익을 보고 내놓은 물량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지난달 18거래일 연속 순매도한 외국인처럼 기관들이 장기간 순매도를 이어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평가다. 특히 최근 펀드로 시중자금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조만간 저가매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97조1,904억원까지 줄어들었던 주식형 수익증권 잔액은 최근 5거래일 연속 증가하면서 지난달 31일에는 8,000억원 이상 늘어난 97조9,913억원까지 불어났다.
김형렬 교보증권 연구원은 “기관이 외국인처럼 국내 증시에서 막무가내로 팔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어느 정도 손절 물량이 나오면 방향을 바꾸게 될 것”이라며 “유럽ㆍ미국 등 대외적 상황이 안정되거나 금융당국에서 정책적 의지를 보이면 연기금을 비롯해 기관에서 저가매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학균 연구원도 “펀드는 기본적으로 주가가 하락하면 돈이 유입되는 속성을 지녀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며 “유럽중앙은행(ECB)에서 부실국가의 국채매입, 예금자 보호 강화 등 조치만 해주면 강한 반등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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