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두 번째 일본인 인질을 참수하는 동영상과 함께 미국의 중동정책에 협조하는 일본에 대한 '학살(carnage)'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일본 열도가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IS가 일본을 정조준하고 나서면서 지금까지 테러 위협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던 '평화국가' 일본의 외교안보정책도 새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아베 신조 정권이 해외 자국민 구출이라는 명분 아래 자위대 역할을 확대하는 등 군사활동 강화에 속도를 낼 가능성도 고조되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는 억류 중이던 일본인 인질 고토 겐지(47)씨를 참수했다고 주장하는 동영상을 일본 시간으로 1일 새벽 인터넷에 올렸다. '일본 정부에 대한 메시지'라는 영어로 시작되는 67초 분량의 동영상에서 IS 대원으로 추정되는 검은 복면의 남성은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고 무릎 꿇은 고토 옆에서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동참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무모한 결정 때문에 일본의 악몽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상은 고토가 살해된 후의 모습을 담은 화면으로 끝났다.
IS가 일본인 인질 2명을 모두 참수함에 따라 IS에 살해된 인질은 미국인 3명과 영국인 2명, 비공개로 처형된 러시아인 등을 포함해 모두 8명으로 늘어났다. IS가 인질교환을 위한 교섭 과정에서 참수하겠다고 위협한 요르단 조종사 마즈 알카사스베 중위의 생사는 이번 영상에서 언급되지 않았으나 일본 교도통신은 그가 지난달 30일 고토와 함께 이미 살해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이날 보도했다.
고토의 참수 소식에 일본 열도는 경악했다. 인질구출을 위해 요르단·터키 등 중동 주변국과의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온 아베 총리는 이날 동영상 공개 후 "비도덕적이고 비열하기 그지없는 테러 행위에 격렬한 분노를 느낀다"면서 "테러리스트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격앙된 감정을 표출했다. 그는 이어 "일본이 테러에 굴복하는 일은 없다"면서 "식량 및 의료 지원 등 인도적 지원을 더욱 확충해 테러와 싸우는 국제사회에서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처참하게 자국민의 목숨을 내줬다는 슬픔과 분노 못지않게 큰 외교적 과제를 일본 정부에 안겨줬다. 자국민의 안위가 현실적인 위험에 빠지면서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역할을 확대하겠다며 '적극적 평화주의' 노선을 걷고 있는 아베 총리의 외교정책도 중대기로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아베 정권이 미일 동맹 강화에 속도를 내면서 군사적 역할을 확대해 중동 분쟁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게 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동영상에서 고토를 참수한 것으로 추정되는 IS 대원은 아베 총리를 향해 "이 칼은 겐지를 죽일 뿐 아니라 너희 국민들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든 학살을 이어가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에 대해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금까지 중동에서 일본인을 표적으로 삼은 살해 사건은 드물었지만 이제 일본도 공격 대상이라는 사실이 부각됐다"며 "일본인이 테러에 휘말릴 위험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일본 외무성에 따르면 현재 해외에 거주하는 재외 일본인은 약 126만명이며 중동 지역에 거주하는 일본인도 1만명에 육박한다.
일본인에 대한 테러 행위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당장 일본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아베 총리는 이날 아침 관계각료회의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차례로 열어 국내외 자국민의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할 것으로 당부했다. 나카타니 겐 방위상도 유엔평화유지활동(PKO) 등을 위해 해외에 파견된 자위대가 IS 테러 대상이 되지 않도록 단독 외출을 금지하는 등 안전에 최선을 다하도록 지시했다. 일본의 비정부조직(NGO)도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한편 요르단·터키 등 중동의 우호국을 통한 외교적 해결 노력이 참담한 실패로 돌아간 가운데 아베 총리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해외 자국민 구출을 위한 자위대 활동 강화에 박차를 가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도쿄신문은 해외에서 자국민이 사건에 휘말릴 경우 자위대에 구출 임무를 부여하는 방안을 아베 총리가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최근 국회에서도 "해외에서 일본인이 위험에 처해도 자위대가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며 "당사국의 동의가 있을 경우 자위대의 능력을 살려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국가의 책임"이라는 주장을 폈다. 현재 자위대의 임무는 해외에서 사건이나 재해를 입은 자국민을 운송하는 데 국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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