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탄생하는 삼성물산이 실질적 지주회사로서 역할을 강화하면서 삼성그룹의 지주사 체제 전환 여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단 이번 합병으로 실질적 지주사 노릇을 하는 삼성물산 법인이 탄생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제일모직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 지분이 40%에 육박하며 삼성물산은 그룹 내 계열사 지분을 다수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합병 삼성물산은 삼성전자(4.06%)를 비롯해 삼성생명(19.4%)·삼성SDS(17.08%)·제일기획(12.64%)·삼성정밀화학(5.6%) 등의 주요 계열사 대주주가 된다.
관건은 삼성그룹이 공식적으로 지주회사 전환 수순을 밟을지 여부다. 지주사 체제를 선택하면 보다 안정적이면서 영속적인 계열사 지배구조를 갖추게 된다. 지주회사로 전환시 주식 스와프 등의 방식을 활용하면 상속세나 증여세를 절감하면서 후대에 회사 지배권을 넘겨줄 수 있다. 지난해부터 시행되는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과세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삼성으로선 지주사 전환에 필요한 천문학적 비용이 버겁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지주사는 상장 자회사 지분의 20% 이상, 비상장 자회사는 4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데 삼성그룹이 이 요건을 충족하려면 수조원대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상당수 전문가는 삼성이 지주사 전환 없이 주요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승계작업을 마무리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내놓는다. 먼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해 오너 3세들로 하여금 삼성전자 지분율 4.06%를 간접적으로 확보하게 하는 게 1단계다. 이어 오너 3세와 삼성물산이 각각 19.1%, 17.1%의 지분을 보유한 삼성SDS를 삼성전자에 합병시키거나 지분을 현물출자하는 것이다. 이 경우 오너 일가와 삼성물산의 지분율은 각 3% 정도씩 상승하게 되고 삼성전자에 대한 오너 일가의 직간접적 지분율을 15%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셈법이다.
일각에서는 삼성SDS에 대한 현물출자 없이 이대로 승계작업이 끝난다는 주장도 나온다. 물론 지주사 전환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이 부회장을 비롯한 오너 3세들은 그룹 승계의 핵심인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삼성생명 지분 상속에 필요한 세금 50%를 납부해야 한다. 약 6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금액이다.
반면 이번 합병이 지주사 전환을 앞둔 포석이라는 전망도 여전히 만만찮다. 장세진 KAIST 교수는 "당장 추진하기는 어렵지만 투명한 승계와 안정적 지배구조를 달성하기 위해 지주사 전환은 필수"라면서 "삼성 쪽에서도 상황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다양한 지주사 전환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의 승계작업을 바라보는 여론을 의식해서라도 지주사 전환을 통해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는 이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합병을 첫발로 한 구체적 지주사 전환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합병 삼성물산을 삼성전자와 합병시켜 탄생하는 법인을 지주회사로 바꿀 것이라는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삼성물산처럼 주요 계열사들 지분을 다수 들고 있으며 자금력도 풍부해 지주사 전환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이 부회장이 남매지간인 이부진·이서현 사장과 어떤 방식으로 언제 사업을 분리할 지도 지대한 관심거리다. 박중선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그룹이 실질적으로든 공식적으로든 지주사 체제를 강화할수록 LG-GS의 분리처럼 형제 간 사업 분할이 더욱 용이해질 것"이라면서도 "다만 지주사 체제를 확립하기 전까지는 형제들이 서로 힘을 합쳐야 하는 만큼 사업분할은 지주사 체제가 어느 정도 완성된 다음 얘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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