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9일간의 마라톤 협상 끝에 잠정 타결됐던 이란 핵협상의 단꿈이 일주일도 안 돼 흔들리고 있다. 협상 주축이었던 이란과 미국이 각자 발표한 일종의 합의설명자료인 '팩트 시트'에서 양국은 주요 이슈마다 첨예한 시각차를 드러내 진정 합의가 된 것인지를 놓고 논란을 사고 있다.
심지어 또 다른 협상참가국인 프랑스조차도 미국과 다른 자료를 내놓아 오는 6월 말로 잡힌 시한 내에 최종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여부는 미지수다.
10일 서울경제신문이 미국·이란 정부가 각각 자국에서 발표한 핵협상 팩트 시트를 비교한 결과 이란 핵무기 개발 억제의 중요 조건인 △경제제재 완화 △핵시설 존폐 △핵물질 관리 △핵 프로그램 사찰 및 감독 △최종협상 시한 △잠정 및 최종합의의 법적 효력 등에서 뚜렷한 의견차이가 발견됐다. 핵시설을 대거 감축하고 제재를 푼다는 총론을 제외하면 각론에서는 현격한 입장차이가 존재하는 셈이다.
특히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문제를 놓고 이란은 최종합의 타결 시 미국과 유럽연합(EU), 유엔이 '즉각' 제재를 '해제'할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미국은 이란이 합의사항을 이행했다고 확인된 경우에만 제재를 '완화' '유예'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또한 핵개발 관련 경제제재가 완화되더라도 또 다른 이슈 관련 제재들은 유효하다고 못 박았다. 우선 테러·인권침해·탄도미사일 등에 관한 대이란 경제제재는 유지된다는 게 미국 측 자료 내용이다. 탄도미사일과 재래식 무기 제한 및 관련 화물 검색, 자산동결 등을 골자로 한 '민감한 기술 및 활동의 이전'에 관한 안보리 결의안의 핵심조항은 별도로 다시 제정돼 효력을 유지하게 된다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이란의 최종합의 불이행 시 조치에 대해 미국은 기존 경제제재를 환원한다고 팩트 시트에 명시했으나 이란은 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담지 않았다.
핵시설과 관련해 미국은 이란이 1세대 원심분리기인 'IR-1'형 모델만 쓰도록 허용한다고 못 박았다. 1만9,000개에 달하는 이란 원심분리기 중 IR-1형 6,104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봉인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다 최대 20배까지 빠른 속도로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는 'IR-2·4·5·6·8'형 원심분리기에 대해서는 최소 10년간 우라늄 농축에서의 사용이 금지되며 만약 연구개발 목적으로 이용되더라도 사전 합의 내용을 준수하는 선에서 제한적으로만 허용된다고 미국 측은 소개했다. 이스라엘타임스는 프랑스 외무부가 발표한 팩트 시트를 단독 보도하면서 이란이 'IR-2·4'형의 사용을 허용하고 있으며 연구개발 목적용으로는 'IR-4·5·6·8'형을 모두 허용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첨단 원심분리기일수록 우라늄 농축 속도가 최대 20배나 빨라 보유국은 핵무기를 단기간에 제조할 수 있게 돼 만약의 경우라도 이란 핵개발 시간을 1년 이상으로 늦추겠다는 미국의 노림수를 무력화할 수 있다.
미국은 이 밖에도 핵물질 재고 감축, 우라늄 채굴광산 및 정련소의 최장 25년 감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정기적인 핵시설 사찰허용 등을 팩트 시트에 명시했다. 반면 이에 대해 이란은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 양당정책센터의 외교정책담당 이사인 블레이즈 미츠탈은 CNBC방송에서 협상국별 팩트 시트의 차이에 대해 "(협상 당사국들이) 협상시한의 압박 속에서 무언가 (결과를) 도출하려고 달려들다가 제대로 완전히 합의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지난 7일 미국 NPR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악마는 디테일(협상 각론) 안에 있고 우리는 앞으로 두세 달 동안 매우 힘든 협상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시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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