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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낮 수은주가 50도 가까이 치솟는 중동의 플랜트 현장. 그것도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데다 여전히 폭탄 테러가 빈번한 이라크에 국내 업체의 젊은 여성 엔지니어 2명이 근무하고 있어 화제다. 이라크 루마일라 가스터빈 발전소 현장에서 일하는 현대엔지니어링 안주현(31) 대리와 성은정(29) 사원이 그 주인공이다.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한 안 대리는 2008년 현대엔지니어링에 입사해 올해 2월 이라크에 파견됐다. 현장 환경설비 설치 및 시운전이 그의 역할. 성 사원은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한 후 2010년에 입사했다. 본사에서 발전 설비 설계를 담당하다 안 대리와 함께 파견돼 현장에서 케이블 스케줄 및 전기도면 관리를 맡고 있다.
루마일라 가스터빈 발전소 현장은 바그다드로부터 약 600㎞ 떨어진 이라크 내에서도 대표적인 오지다. 아직도 금녀(禁女)의 영역으로 인식되는 중동 플랜트 현장, 그중에서도 치안이 불안한 이라크 파견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이라크에 파견된 국내 기업 근로자 중 여성은 이 두 명뿐이다.
2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안 대리는 "엔지니어링 회사 직원들에게 해외 현장 근무는 당연한 것"이라며 "이라크라고 해서 크게 다를 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찬 각오로 이라크에 도착했지만 여건은 예상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점은 기후와 여성의 지위가 낮은 중동 문화. 안 대리는 "숨이 턱턱 막히는 현지 기후에 체력적으로 적응하기 힘든 상황에서 현장에 나가면 여성 엔지니어를 무시하는 듯한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 심리적 부담도 컸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들은 포기하고 돌아가면 어렵게 설득한 부모님을 뵐 낯이 없다는 생각으로 현지 근로자들과의 소통,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현장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성 사원은 "여성의 장점은 남성들보다 비교적 꼼꼼하다는 점인데 이라크 근로자들과 수시로 업무 미팅을 할 때 그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세심한 부분까지 지적하고 업무를 조율하자 결국 인정했다"고 전했다.
이라크 근무에 이미 익숙해진 두 여성의 최근 고민은 다름 아닌 '망가진 피부'다. 성 사원은 "바람과 뜨거운 태양열에 피부가 많이 상해 한국에 복귀하면 피부숍부터 가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이라크 현장에 있는 여직원이라는 이유로 회사 안팎에서 너무 많은 관심을 받는 게 오히려 부담이라는 두 사람의 목표는 '해외 플랜트 여성 현장소장 1호'다. 안 대리는 "며칠 전 인터넷으로 '여성 현장소장 1호 탄생' 기사를 봤다"며 "그 타이틀은 놓쳤지만 국내 최초 해외 플랜트 여성 현장소장이라는 영예는 누려보고 싶다"며 멋진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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