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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리어왕'

아집의 왕… 탐욕의 귀족… "저 훌륭한 분들이 진짜 광대예요"

두딸에 배신당해 죽는 왕 통해 인간본성·갈등 절절히 그려내

분노·광기에 사로잡힌 리어왕 폭풍우 속 절규하는 장면 압권


아비는 거짓 혀에 속아 진실 된 자식을 내치고, 자매·형제는 사욕에 눈멀어 독과 칼을 품는다. 아집으로 가득 찬 리어왕과 탐욕스럽거나 어수룩한 귀족 양반들, 이 우매한 인간 틈에서 왕의 광대는 외친다. "저 훌륭한 분들이 나 혼자 광대를 하게 두지 않는단 말이지."

지난 16일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린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사진)'은 세상 시선에서 자유로운 '현명한 광대'를 통해 욕심에 사로잡힌 '우둔한 인간'을 한껏 비틀어댄다.

극 중 리어왕은 탐욕스런 두 딸에게 배신당해 분노로 미쳐 죽음에 이른다. 리어왕을 지키려던 글로스터 백작 역시 야망에 눈먼 둘째 아들의 배신과 음모로 두 눈을 잃는다. 왕좌에서 내려와 비로소 매몰차게 내친 막내딸의 효심을 깨닫는 리어와 두 눈을 잃고 비로소 장남에 대한 자신의 오해와 진실을 보게 되는 글로스터. 두 개의 이야기는 하나로 연결되며 시대를 뛰어넘는 인간의 본성과 세대의 갈등, 더 나아가 사회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분노와 광기에 사로잡힌 리어가 폭풍우 몰아치는 황야를 가로지르며 절규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다. 객석을 향해 비스듬히 기운 2톤짜리 사각 무대는 바닥과 분리된 채 4개의 와이어에 매달려 공중으로 올라가고, 그 위에선 빗물이 쏟아진다. 더 이상 누군가의 왕도 아비도 아닌 리어는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무대에서 토해낸다. "폭우야 쏟아져라, 태풍아 몰아쳐라, 비야 쏟아 내려라.(중략) 천지를 진동시키는 너 천둥아, 창조의 모태를 부수고 배은망덕한 인간의 씨를 말려버려라." 5분 남짓 이어지는 황야 장면에선 2톤의 물이 배우와 무대 위로 쏟아져 내리며 광기 어린 분위기를 북돋운다. 폭풍 속 빗줄기를 타고 울려 퍼지는 리어의 절규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따뜻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 작품의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리어를 연기한 장두이를 비롯해 주요 배우의 열연은 두말하면 입 아프다. 그중 광대 역의 이기돈은 단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동안 '오이디푸스', '오장군의 발톱', '단테의 신곡' 등 다수 연극에서 새, 개, 나무 등을 연기하며 신선한 신체 연기를 펼쳐 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독특하지만 과장되지 않은 몸짓과 말투로 때론 냉철한 비판자요 때론 웃음을 전달하는 '신 스틸러(scene stealer)'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작품 속 황량함과 폭력이 셰익스피어 시대는 물론 지금 우리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고 봤어요. 이 연극이 하나의 성찰의 계기이자 위로가 되길 바랄 뿐이죠." 윤광진 연출의 의도는 작품 속에, 그리고 관객에게 충분히 녹아들었다. 작품 전반의 묵직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밀도 높은 감정선과 희극적인 요소가 적절히 어우러져 3시간(인터미션 15분 포함)의 러닝타임이 금세 지나간다. 5월 10일까지 명동예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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