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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지역발전·수익 두 토끼 잡은 서울월드컵경기장

축구전용경기장? 축구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울월드컵경기장 건축1
황포돛배를 형상화한 지붕은 햇빛을 가려주면서도 공기 순환이 원활한 구조를 갖고 있다. 또 사각으로 설계된 경기장에서는 관람객과 선수 사이가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진다. 실제 관람석 중간 높이에서 내려다보면 선수의 표정이 보일 것 같다.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 스케치
건축가 류춘수 이공건축 회장이 붓펜으로 그린 서울월드컵경기장 스케치.
서울월드컵경기장 건축
서울월드컵경기장 내 회의장 겸 행사장 공간. 국내산 대리석을 전통 한옥 마루처럼 깔고, 천장에도 기둥을 돌출시켰다.
누끼-서울월드컵경기장 건축4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전통 방패연을 형상화한 형태이지만, 경기장을 둘러싼 데크에서 지붕을 오려다보면 전통 한옥의 처마를 연상시킨다.
월드컵경기장 건축가 류춘수 인터뷰
설계자인 류춘수 이공건축 회장이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설계부터 월드컵 이후 고려… 내부에 쇼핑몰·문화센터

남쪽 관람석 가변무대 설치

수익 내는 경기장으로 만들어 난지도 지역 이미지도 개선

방패연 형상화 한국적 美 살려 세계서 가장멋진 10대 경기장에


지난 2002년 6월. 그 여름의 월드컵은 우리에게 인상적인 기억을 가져다줬다. 아시아 지역 국가로는 사상 첫 4강이라는 등의 숫자보다는, 그간 남의 잔치 같던 월드컵을 열어 그 주인공이 됐다는 기분. 수십만이 집결한 광화문 응원만큼이나 신나는 여름이었다. 이제 거짓말처럼 그 기억도 희미해지고 있지만 서울월드컵경기장은 그 여름을 오롯이 안고 있다.

2001년 말 준공된 월드컵경기장은 그 이상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경기장을 넘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되면서 도시 발전은 물론 수익을 내는 스포츠 경기장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단지 건축물의 기능성과 아름다움을 살펴보는 것을 넘어 이 도시에 어떤 영향을 주며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를 설계자인 류춘수 이공건축 회장과 함께 살펴봤다.

연 190억 수입…'축구도 할 수 있는 다목적 건축물'

사실 상암경기장은 쉽게 마음을 내 다녀올 곳은 아니다. 서울 강남 쪽은 말할 것도 없고 광화문에서도 30분은 더 간다. 그저 특별한 행사 때나 찾아갈 만한 곳 같다. 하지만 경기장에 가까워지면 그렇지도 않다. 강변북로에서 경기장 쪽 진입구로 들어서면 '하늘공원'을 찾는 인파가 평일 오전임에도 줄을 서듯 올라간다. 조금 더 들어가면 '평화의공원' '월드컵공원'에도 사람이 적지 않다.

서울월드컵경기장 건물도 마찬가지다. 평일 오전 경기가 없는 건물은 적막하지만 내부 상업공간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다. 가만히 안내판을 보면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푸드코트·예식장·문화센터·수영장·대형할인점·쇼핑몰 등. 평일 오전에는 오히려 백화점 위에 경기장을 얹어놓은 것 같다고 할까.

실제 서울시 시설공단에 따르면 경기장 실내면적 16만6,503㎡ 중 상업시설 공간은 8만4,260㎡로 꼭 절반을 차지한다. 연간으로 따지면 상업시설을 찾는 유동인구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류 회장은 이곳을 '축구도 할 수 있는 다목적 건축물'이라고 말한다. 축구전용 경기장이지만 설계 단계에서부터 월드컵 이후를 생각했다는 얘기다.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스포츠 경기장은 항상 적자시설이죠. 국내 다른 경기장도 매달 수억원씩 관리비가 나가는데 어쩔 수 없는 비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지난해 192억원의 수입을 올렸고 고정비용을 빼도 91억원을 순이익으로 남겼어요. 경기는 많지 않지만 오페라와 공연, 각종 행사가 이어집니다. 이를 위해 남쪽 관람석 중 800여석이 안으로 접혀 들어가 가변무대 설치할 수 있게 설계됐습니다."

월드컵이 스포츠행사에 그치지 않고 경제·사회·외교 등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듯 서울월드컵경기장도 인근 지역 경제를 견인했다.

공원과 문화시설·쇼핑몰 등이 함께 모인 경기장은 주변 생활여건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지역 이미지도 쇄신했다. 과거의 쓰레기매립지 난지도 인근이라는 것은 그저 몇몇 지명에 남아 있는 정도다. 잠실종합운동장을 비롯해 어떤 스포츠경기장보다도 유동인구가 많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경기장은 둥글다는 고정관념 탈피…방패연을 형상화한 사각 구장

잘 알려졌듯이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전통적인 방패연을 형상화한 건축물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커다란 방패연이 있고 네 모서리를 둥글게 안쪽으로 파 들어간 형태다. 가까이는 승리에 대한 희망을, 더 멀리는 통일과 인류평화에 대한 희망을 연에 실어 띄워 보내는 이미지다. 실제로 월드컵 개막식에서는 플라스틱 연에 풍선을 달아 하늘로 날려보내는 퍼포먼스도 보여졌다.

하지만 원래 설계는 달랐다. 어렵게 설계 용역을 따낸 류 회장이 1달여 동안 가다듬은 형태는 잠실종합경기장이나 여타 축구경기장이 그렇듯 원형이었다. 세부 도면작업을 넘기고 프랑스 월드컵경기장을 보러 가던 비행기에서 그는 무심코 잡지를 폈다가 무릎을 친다.



첫 페이지 가득한 방패연 사진을 본 것. 케이블과 직물로 공간을 구성한 건축이 트레이드 마크인 그에게 방패연이야말로 딱 맞는 이미지였던 것. 앉은 자리에서 바로 스케치를 그리기 시작했고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본사에 팩스로 보냈다.

"로마 콜로세움 이래 경기장은 다 둥글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죠.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축구전용 경기장이니, 트랙 없이 사각으로 만들 수 있지만 습관적으로 둥글게 설계한 거죠. 경기장을 사각으로 설계하면 선수와 관객 사이가 훨씬 가까워지고 공사가 쉬워져 공사기간과 비용도 단축할 수 있죠. 실제로 먼저 공사를 시작한 부산·대구 월드컵구장보다 공사가 더 빨리 끝났습니다."

큰 주제는 방패연이지만 경기장에서 그가 자랑하고 싶은 곳은 또 있다.

남쪽 평화의 공원에서 경기장으로 바로 연결되는 고가에 올라서면 경기장 천장으로 요트의 돛을 연상시키는 기둥이 10여 개 솟아있다. 바람을 가득 안은 황포돛배처럼 빳빳하게 당겨진 천(테프론 막)이 지붕을 덮고 테두리는 전통 소반(팔각모반)을 닮았다. 여기서 네 모서리 쪽 아래로 다가서서 천장을 올려다보면 친근한 풍경이 드러난다. 우리 한옥에서 툇마루에 앉아 처마를 쳐다보는 풍경과 빼 닮았다.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이 지점을 해외에서도 알아줬다.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6월 NHK에서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한 다큐멘터리를 내보냈다. 건축가의 고향인 경북 봉화의 한옥과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나란히 비교하면서 한국적인 미감에 대해 살폈다. 이듬해에는 영국 축구전문지 월드사커가 '세계에서 가장 멋진 10대 축구경기장'으로 서울월드컵경기장을 꼽았다.



히딩크·선수동상은 있지만 설계자 이름은 한줄 안남아 건축가에 대한 인식 아쉬워

설계자 류춘수 이공건축 회장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완공된 지난 2001년 12월 중순께 오픈 기념행사가 열렸다. 대통령이 나와 축사를 하는 자리에 서울시장, 축구협회장, 건설사 사장과 함께 설계자인 류춘수 이공건축 회장도 초대받았다. 설계자로서 이들과 나란히 그간의 노고에 대해 격려받는 것은 황송한 일이었지만 자리가 끝날 즈음엔 창피함을 떨칠 수 없었다.

류 회장은 인터뷰에서 "서울시장과 축구협회장, 건설사 사장까지 한 분 한 분 거명하며 감사를 표했지만 정작 건축물을 설계한 사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히딩크 감독과 선수 동상까지 있지만 설계자에 대해서는 이름 한 줄 남아 있지 않아요. 한국에서 건축가에 대한 인식이 이런 수준이다"고 덧붙였다.

류 회장은 서울시에 대해서도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공사가 진행되면서 서울시에서 먼저 설계 관련 자료를 모아 기념관을 만들겠다고 제의해왔어요. 그래서 스케치와 도면·사진 등을 모두 넘겨줬는데 막상 준공되고 나니 소식이 없더군요. 궁금해서 시에 연락하니 모두 잃어버렸다고 합디다. 결국 한참 후에야 창고 어디선가 발견돼 모두 돌려받았지만 그걸로 또 끝이더군요."

특히 공공부문 건축에서 정부 관료나 공무원, 비전문가의 간섭에 대해서는 더 목소리를 높였다.

"설계하는 어려움이 49% 정도라면 그런 비전문가의 참견을 방어하는데 51%의 노력이 필요할 정도입니다. 서울월드컵경기장도 한 전직 장관이 끼어드는 것을 겨우 막았죠. 언젠가 지방 국악원 설계 때는 난데없이 빌딩 위에 기와지붕을 얹어달라는 걸 겨우 설득했습니다. '만약 제가 국악인 연주를 심사하면서 악기를 바꾸고 장단 고치자고 하면 저더러 미쳤다고 하지 않겠나'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였습니다."



/이재유기자 0301@sed.co.kr 사진=송은석기자

사진제공=이공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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