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0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 호텔에서 크리스토프 벤 글로벌펀드 대외협력국장을 만났다. 이날은 국회에서 한국 아동 · 인구 · 환경 의원 연맹(KCPE ·Korean parliamentary league on Children, Population Environment)과 글로벌펀드가 공동으로 주관한 국제 보건 민관 협력 세미나가 열린 날이었다. 벤 대외협력국장은 이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았다.
벤 국장은 말한다. “한국은 공여국(供與國 · 원조를 제공해 도움을 주는 나라)이 된지 얼마 안 된 나라입니다. 공적개발원조(ODA ·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역사도 짧고요. 하지만 한국은 짧은 공여국 역사에서 다양한 ODA 활동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지원 규모도 점차 확대해 나가고 있고요. 민간 부문의 ODA 활동도 점점 더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글로벌펀드의 활동과 성과 등을 설명하고 이를 통해 한국 민간 부문의 국제사회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방한하게 됐습니다.”
◆ 글로벌펀드의 동력
글로벌펀드는 에이즈와 결핵,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설립된 국제 금융기구이다. 이 분야에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2002년 G8 정상회의에서 미국, 프랑스, 일본등이 처음 설립을 제안했고, 같은 해 코피 아난 Kofi Anan당시 유엔 사무총장의 주도 아래 여러 선진국과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 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등 민간 단체의 지지와 지원으로 탄생했다. 56개 나라에서 출연금을 내고 있으며 한국 역시 2002년 글로벌펀드 창설 때부터 지속적인 지원을 해왔다. 각국 정부와 민간단체로부터 연간 약 40억 달러를 모금해 140여 개 나라를 지원하고 있다.
벤 국장은 말한다. “한국 정부의 출연금 규모가 최근 크게 늘었습니다. 글로벌펀드는 3년마다 국가별 출연금을 보충하는 콘퍼런스를 여는데,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100만~200만 달러 수준이던 한국 정부의 출연금이 2010년 콘퍼런스에서는 600만 달러로 훌쩍 뛰었습니다. 그다음이자 가장 최근 콘퍼런스였던 2013년 미국 워싱턴 D.C. 콘퍼런스에서는 1,200만 달러로 늘었고요. 매우 고무적인 상황입니다.”
글로벌펀드는 운영 자금의 94%를 각국의 정부 지원으로 충당한다. 전 세계에서 글로벌펀드에 가장 많은 지원을 하는 곳은 미국 정부이다. 글로벌펀드 전체 출연금의 3분의 1 이상을 미국 정부가 낸다. 미국 다음으로는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등이 뒤를 잇는다. 한국은 비슷한 경제 규모의 여느 국가에 비해 지원금을 많이 내는 편은 아니지만, 콘퍼런스마다 지원금을 큰 폭으로 늘리고 있어 주목된다.
글로벌펀드 운영 자금의 6%는 민간 출연금이다. 민간 출연금은 고소득 개인의 개별 기부와 민간단체 기부, 기업 기부로 나눌 수 있다. 각각의 기부 비율은 46%, 33%, 21%로 고소득 개인의 기부가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벤 국장은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거부(巨富)가 자신의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합니다.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 의지도 크긴 하지만,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다 보니 사업장이 있는 지역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글로벌펀드 같이 글로벌한 활동을 하는 곳에는 기업보다는 거부들의 지원이 더 많습니다. 개인 기부자 중에서는 빌게이츠 Bill Gates 가 가장 많은 돈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의 지역에서도 거액의 기부자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 자금 운용 방법과 성과
글로벌펀드는 2002년 창립 이후 현재까지 300억 달러를 모금해 270억 달러를 집행했다. 글로벌펀드의 지원으로 2014년까지 730만 명의 에이즈 환자와 1,230만 명의 결핵 환자가 치료를 받았다. 글로벌펀드가 말라리아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배포한 모기장만 4억 5,000만 개에 달한다.
글로벌펀드는 국제 기금의 성격을 띠고 있어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직접적인 사업 수행은 하지 않는다. 이들 질병을 퇴치하기 위한 재원 확보와 자금 운용, 자금이 투입된 개별 프로젝트의 감시와 감독까지만 글로벌펀드의 역할이다. 글로벌펀드는 효율적이고 투명한 자금 집행과 감시 · 감사를 위해 PwC, KPMG 등 세계적인 회계 · 컨설팅 법인의 힘을 빌린다. 또 실제 현장을 점검하기 위해 외딴 지역일지라도 직접 방문해 상황을 확인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있다.
벤 국장은 말한다. “고액 자산가나 기업이 국제사회에 이바지하고 싶다면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지원하고 싶은 지역에 직접 기부하든가 글로벌펀드 같은 곳에 출연금을 위탁하는 방법입니다. 글로벌펀드의 감시 · 감사 시스템은 개인이나 기업이 글로벌펀드에 동참하는 데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합니다. 자신이 낸 돈이 정말 제대로 된 곳에 쓰이고 있는지, 투명하게 쓰이고 있는지 걱정을 덜 수 있기 때문이죠. 최근 민간 부문에서 출연금이 늘고 있는 것도 이런 점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이즈나 결핵,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직접적인 사업 수행은 ‘ 지역 조정 메커니즘( CCM · Country Coordi nating Mechanisms)’에 따라 지역 전문가 집단이 맡는다. CCM은업무 계획 및 예산 조정, 평가 프로그램 기획 등 사업 수행과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적용된다. 특정 지역에서 질병을 퇴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해당 지역의 전문가와 관계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글로벌펀드의 믿음 때문이다.
벤 국장은 말한다. “저희는 자선재단과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저희는 일반 기업들처럼 자금 집행의 효율화를 추구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국가가 지역 상황에 맞는 질병 퇴치 계획과 필요한 재원 규모를 제출하면 저희가 내용을 검토하면서 해당 국가의 시민단체나 전문가 집단, 환자 집단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의사를 반영해 최종 승인을 하죠. 필요한 재원은 3개월마다 나누어 집행하고 그 기간마다 계획한대로 자금이 집행됐는지, 효과는 있는지 등을 확인한 후 다음 자금을 지원합니다. 지역별 특성에 맞춘 최적의 프로젝트 구성과 실행, 자금의 효율적 집행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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