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인공태양이라 불리며 지난 2007년 9월 완공된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KSTAR)'는 이 같은 핵융합 기술 상용화의 첨병이다. 국제적으로도 관련기술의 상용화 연구를 주도하며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16일 역사적인 5번째 장치 운전에 돌입한 KSTAR를 집중 해부해봤다.
대덕=구본혁 기자 nbgkoo@sed.co.kr
대덕연구단지 내 국가핵융합연구소에는 거북선을 형상화한 실험동이 자리 잡고 있다. 다름 아닌 KSTAR가 둥지를 틀고 있는 보금자리다. 이곳 1층에 가면 가로 37m, 세로 50m, 높이 30m로 축구장 4분의 1크기인 KSTAR의 주장치실이 나온다. 그리고 여기에 높이와 직경이 9m에 달하는 도넛모양 진공용기를 초전도자석으로 둘러 싼 토카막형 핵융합장치 KSTAR가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KSTAR는 지난 1995년부터 약 12년간 총 사업비 3,090억원을 들여 39개 참여기관과 1,510 명의 인력이 동원돼 2007년 완공됐다. 이후 완공 10개월 만에 첫 가동과 함께 최초 플라즈마 발생에 성공하며 연구 수행단계로 본격 돌입한 상태다.
권면 국가핵융합연구소장은 "KSTAR는 핵 융합로 상용화에 있어 반드시 확보해야 할 고성능 플라즈마 운전 기술과 장시간 안정적 제어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설계됐다"며 "완공 후 안정적 운영을 통해 세계 핵융합 연구를 선도해 갈 수 있는 잠재력을 확인시켜 줬다"고 강조했다.
권 소장은 또 "KSTAR는 핵융합 분야의 국제공동프로젝트인 국제열핵융합실험로(ITER)의 약 25분의 1 규모로서 ITER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기초실험 자료를 제공하는 한편 한국형 핵융합 실증로 건설 연구를 함께 수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핵융합은 친환경성, 안전성, 무한성 등 미래 청정에너지원의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에너지로 손꼽힌다.
플라즈마 트랩
KSTAR의 핵심설비는 진공용기인 토카막. 플라즈마 입자들을 밀폐시켜 주는 일종의 플라즈마 트랩이다.
핵융합 발생장치에는 이처럼 1억℃ 이상의 초고온 하에서 발생한 플라즈마 입자들을 밀폐시켜 핵융합 반응을 안정적으로 지속시켜주는 진공용기가 필수적이다. 플라즈마로 변한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면 헬륨과 다량의 중성자가 발생되는데 이때 방출되는 열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는 게 핵융합 발전의 원리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에 근거할 때 17.58메가전자볼트(MeV)의 막대한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방출된다.
즉 토카막과 같은 진공용기가 없으면 어렵사리 플라즈마를 발생시켜도 곧바로 사라져 안정적 핵융합 발전을 꾀할 수 없다. 오영국 공동 실험연구부장은 "고온의 플라즈마를 생성하는 것도 어렵지만 핵융합 연쇄반응이 일어나도록 플라즈마를 특정공간에 가둬두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며 "KSTAR의 토카막은 극저온의 초전도체를 이용, 플라즈마를 공중에 떠 있도록 만든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KSTAR의 토카막 내부에는 총 30개의 초전도자석이 설치돼있다. 이중 16개가 D자형 토로이달자석으로 강력한 자기장으로 토카막 내부에 플라즈마를 가두는 역할을 한다. 이들 초전도자석은 NB3Sn(니오븀주석)이라는 신소재 합금 초전도체로 만들어졌다. 660℃의 고온에서 1개월 정도 열처리를 해야하는 등 제작이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 부장에 따르면 기존 핵융합연구장치들은 전자석의 재료 로 구리를 사용한 탓에 강력한 전류를 흘릴 경우 엄청난 열이 발생, 장시간 운전이 사실상 불가능했지만 초전도체는 저항이 제로(0)여서 열 발생 없이 장시간 운전이 가능하다.
핵융합 반응의 원료인 중수소는 바닷물 1ℓ에 0.03g이 존재한다. 이것만으로도 300ℓ의 휘발유와 동일한 에너지의 발생이 가능하다.
쉽지 않은 여정
KSTAR의 토카막 내부에는 또 기존 핵융합 연구장치와는 다른 ㄷ자 모양의 플라즈마 제어코일이 설치돼 있다. 총 16개의 다발로 이뤄져 있으며 8개의 구리 전도체가 스테인리스 합금에 쌓여 있는 형태로 제작, 플라즈마의 초고온을 견뎌낸다. 길이가 8m, 중량은 500㎏이나 된다.
양형렬 장치개발연구부장은 "플라즈마 생성 실험을 하다보면 플라즈마 내부에 불순물이 생성되는데 이는 플라즈마 품질 저하의 원인이 된다"며 "제어코일은 플라즈마의 위치 및 불안 정성을 제어하면서 다이버터(Dibertor)라는 불순물 제거장치로 불순물을 이동시키는 역할도 함께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제어코일은 누구나 인정하는 고성능 플라즈마 발생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지만 당초 KSTAR에 적용코자 했을 때는 제한된 공간의 토카막에 설치가 가능할지 논란이 있었다.
특히 KSTAR의 토카막은 4개의 좁은 구멍이 뚫린 원통형 구조여서 거대한 제어 코일의 내부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견해도 제기됐다.
하지만 연구팀은 2008년부터 3차원 설계 기술을 통해 제어코일의 재설계 작업에 착수, 2010년 설치에 성공했다. 양 부장은 "3차원 설계 기술로 실제 크기의 모형을 제작, 다각적인 시뮬레이션을 진행해 해법을 찾아냈다"며 "이 제어코일은 고성능 플라즈마의 안정적 발생·유지를 위한 조건인 D형 플라즈마를 구현해줄 기본 토대가 되는 만큼 ITER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포함해 무수한 기술적 난관을 극복한 KSTAR은 2008년 최초의 플라즈마 발생에 성공한 뒤 플라즈마 유지시간에서 2009년 3.6초, 2010년 최대 5.2초 등 목표치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플라즈마 전류 600킬 로암페어(kA), 지속시간 약 8초(최장 약 12.4초)를 달성했다.
중수소와 삼중수소 1g을 핵융합하면 1만ℓ의 중유와 동일한 열량을 얻을 수 있다. 300g의 삼중수소, 200g의 중수소로 100만㎾급 핵융합발전소를 24시간 가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10초를 향하여
현재 KSTAR는 고장 수리와 가열장치의 성능 향상을 마치고 지난달 16일 5번째 장치 운전에 들어갔다. 연말까지 올해년도의 목표 달성을 위한 실험과 국내외 핵융합연구자들이 제안한 공동 플라즈마 실험을 수행하게 된다. 올해년도의 목표는 국제 공동실험연구의 확대를 위한 고성능 핵융합 플라즈마, 일명 'H-모드'의 안정적 제어 구현. H-모드 유지시간을 10초 이상으로 늘리고, D형 플라즈마 형상과 1메가암페어 (MA) 전류 달성을 통해 핵융합 연구계에 영향력 있는 우수성과를 도출하겠다는 복안이다.
KSTAR의 운전단계는 상온 진공, 극저온 냉각, 초전도자석 냉각, 플라즈마 발생 운전 등 총 4단계로 이뤄진다. 이중 상온 진공 시운전은 KSTAR의 극저온 냉각과 온도 유지를 위한 운전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고성능 플라즈마 생성을 위한 제반환경을 확인하는 절차에 해당한다. 초전도자석 냉각은 초전도자석을 영하 269℃로 냉각하는 작업이다. 진정한 초전도 상태의 구현을 위해 외부의 열이 전달되지 않도록 완벽한 진공상태를 유지한 뒤 초임계 유체 헬륨을 주입, 서서히 온도를 낮춰야 하기 때문에 약 3주정도의 시일이 소요된다고 한다.
양 부장은 "초전도자석은 조건이 맞지 않으면 상전도로 변환돼 대형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운전 중 단 1초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곧바로 플라즈마 상태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워낙 고온, 고압에서 운용되는 만큼 KSTAR는 문제가 발생하는 순간 전력을 차단하고 가동을 중단하는 것만이 안전 확보를 위한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핵융합연구소에서는 정기적으로 다양한 안전 사고 상황을 설정하고 시운전 모의실험을 실시, 장치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권 소장은 "KSTAR는 지난해 초전도 핵융합장치로는 최초로 핵융합 상용화의 최대 난제 중 하나였던 플라즈마 경계면 불안정 현상 (EML)을 완벽 억제하는데 성공했는데 우리가 확보한 ELM 제어기술을 ITER에 적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KSTAR의 우수성을 재차 강조했다.
초임계 유체 (Supercritical Fluid, SCF) 물질에 가해지는 온도와 압력이 특정 수치를 넘어서면 아무리 온도와 압력을 가해도 물성이 변하지 않는 SCF가 된다. SCF는 기체처럼 형태는 없지만 액체와 동일한 비중을 지니며 밀도는 액체와 같지만 점도는 기체처럼 낮은 독특한 물성을 갖는다.
상전도 (normal conduction) 초전도와 대응되는 용어로서 물질이 초전도가 아닌 상태, 즉 평상시 상태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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